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50
한자 裵致瑢妻順興安氏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추모 시기/일시 1904년 - 배치용 처 순흥 안씨 정려됨
묘소|단소 배치용 처 순흥 안씨 효열각 - 쌍계리 영남방송 도원리지국 다리 건너 좌측 100m 지점 강 언덕 위
성격 열녀
성별
본관 순흥(順興)

[정의]

개항기 의성의 열녀.

[활동 사항]

배치용 처 순흥 안씨 [?~?]는 태어난 집안이나 출가한 집안 모두 보잘 것이 없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과 자질이 남달랐다. 시집을 와서 시부모와 지아비를 섬기는 데 있어 조금도 소홀함도 없었다. 하는 일 하나 하나가 모두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올발아 일가친척이며 이웃들이 한결 같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이 위독하여 사경을 헤매자 남편 대신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가 달라고 하늘에 빌었다. 그러자 솔개가 날아와 날짐승 한 마리를 마당에 떨어뜨려 주고 갔다. 이를 고아서 남편에게 먹이니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 약효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하고 남편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때 안씨의 나이가 19세였다. 슬픔을 가눌 길 없어 남편의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매어 죽으려 했다. 그런데 팔순이 넘은 시부모가 이것을 알고 달려와 말렸다.

이후 순흥 안씨는 정성껏 시부모를 모시며 살았다.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3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묘를 하였다. 성묘를 하다 가끔 늦은 밤에 내려올 때는 여우가 나타나 길을 인도해 주고 마을 앞에 이르면 나는 듯이 산으로 돌아갔다. 나이 60에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혈육을 잃은 듯 슬퍼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내 유림에서 1890년 4월 순흥 안씨의 효행을 조정에 상신하자 1904년 마침내 정려의 명이 내려졌다. 이에 비안 군수 임병두(林秉斗)는 마을 안팎으로부터 특별히 찬조를 받아 정려비와 정려각을 건립하였다. 정려각과 비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영남방송 도원리 지국 다리 건너 좌측 100m 지점 강 언덕 위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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