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834
한자 朴之亮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280년 - 박지량 상장군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290년 - 박지량 합단적을 무찔러 공을 세움
활동 시기/일시 1291년연표보기 - 박지량 신병 요양차 의성으로 내려옴
몰년 시기/일시 1292년연표보기 - 박지량 사망
거주|이주지 의성군 - 경상북도 의성군
묘소|단소 장군 묘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만천 1리 막닥골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함양
대표 관직 판삼사사

[정의]

고려 후기 함양 박씨의 의성 입향조이자 무신.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활동 사항]

박지량(朴之亮)[?~1292]은 1271년(원종 12) 수로방호사(水路防護使)가 되고, 1274년(충렬왕 즉위) 여몽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할 때 지병마사(知兵馬事)로 참전하였다. 쓰시마[對馬島], 이키시마(壹岐島)를 거쳐 키타큐슈(北九州)를 쳤으나 태풍을 만나 고려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1280년(충렬왕 6) 11월 그 공으로 상장군(上將軍)이 되었으며, 12월 원나라로부터 무덕장군 관군 천호(武德將軍 管軍 千戶)의 벼슬을 받았다.

1281년(충렬왕 7) 제2차 일본 정벌에 참전하여 300여급의 목을 베어 기세를 떨쳤으나, 원나라 군대의 거듭되는 패전과 강남군(江南軍)이 태풍을 만나 거의 익사하는 바람에 돌아왔다. 1287년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가 되고, 이어 좌익만호(左翼萬戶)가 되어 동계에 주둔하면서 여진에 대비하였다. 그해 12월 판삼사사(判三司事)가 되었다. 1288년 원 황제가 만호, 천호, 백호의 금은패를 보내 주었는데 그는 쌍주(雙珠) 금패 네 개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동북면 병마사(東北面 兵馬使)가 되었다.

1289년 당시 요동에 기근이 들자 원나라 황제의 명으로 고려의 양곡으로 구제케 하였다. 이때 경상 전라도 도순문사(慶尙全羅道 都巡問使)가 되어 군량 수송을 독려하였다. 같은 해 7월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갔다. 원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던 합단(哈丹)이 1290년 그 무리를 이끌고 고려의 동북면으로 침입하자 좌군만호(左軍萬戶)로 이천현(伊川縣)에 주둔하면서 이를 무찔러 공을 세웠다. 1291년 신병 요양차 의성으로 내려와 이듬해 죽었다.

[묘소]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만천 1리 막닥골의 장방형 장군 묘가 박지량의 묘로 추정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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