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선리 산성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728
한자 致仙里山城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846임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신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7년 - 치선리 산성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관련사항 시기/일시 2004년 - 치선리 산성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치선리 산성터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846지도보기
성격 산성|산성터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에 있는 신라 시대 산성 유적.

[개설]

치선리 산성터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자치 마을 서편에 있는 높이 230m의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성벽은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하여 쌓았으며 전체 둘레는 700m 정도이지만 대부분 무너져 내렸다. 성내에는 치선리 봉수터가 있으며 성벽을 따라 곳곳에 성문지(城門址)나 망루지(望樓址)로 추정되는 곳도 있다.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입지와 축성 기법 등 여러 가지 정황상으로 볼 때 신라의 산성으로 처음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변천]

치선리 산성터에 대한 변천 과정은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어렵다. 조선 시대의 각종 문헌에도 치선리 산성터치선리 봉수터에 관한 기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어, 그 이전 시기에 주로 사용된 산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한편 일부에서는 1832년경에 발간된 『경상도읍지』에 나타나 있는 성산산성(城山山城)과, 1864년경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한 『대동지지』에 기록된 고성(古城)을 지금의 치선리 산성터로 비정하기도 하지만, 이는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영남읍지(嶺南邑誌)』 등의 고지도를 통해 볼 때 오류로 판단된다.

[위치]

치선리 산성터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치선리 산84·산86·산89·산90·산845·846·847·848 일대에 위치한다. 치선리 자치 마을 서편에 인접한 높이 230m의 산 정상부에 해당하며 자치 마을 뒤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산성에 이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87년 5월~11월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 의한 지표 조사가 있었고, 2004년 대구 대학교 박물관에서 『의성군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지금까지 발굴 조사는 없었다.

[현황]

치선리 산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에 축조되었지만 주변을 조망하기 좋고 지형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산성으로서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남북으로 길게 7~8부 능선을 따라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은 토석 혼축으로 지형 경사가 급한 서쪽은 높이 1~2m, 북쪽과 동쪽, 남쪽벽은 높이 약 3~6m의 규모로 남아 있다. 내부에는 성벽을 따라 폭 7~8m정도의 평탄한 통로가 나 있는데, 이곳에 근래의 민묘가 많이 조성되어 있다. 이 밖에도 건물지, 망대, 성문터로 추정되는 곳이 있으며 성의 전체 둘레는 약 700m이다. 그리고 성내의 북쪽에 치우쳐 있는 정상부에 치선리 봉수터가 자리 잡고 있다.

[의의와 평가]

치선리 산성은 언제 축조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입지와 축성 기법 등에서 삼국 시대에 축성되어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유사시에 수시로 사용된 산성으로 추정된다. 특히 사곡면 방향에서 남대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와 의성읍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전략적 중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성내의 봉수터와 함께 정밀 조사가 필요한 중요한 관방 유적의 하나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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