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화리 산성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706
한자 上禾里山城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 산45-1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신종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사항 시기/일시 2004년 - 상화리 산성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상화리 산성터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 산45-1 일원지도보기
성격 산성|산성터
소유자 사유지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유적.

[변천]

상화리 산성터 유적은 축성 방법과 주변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삼국 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1832년경 간행된 『경상도읍지(慶尙道 邑誌)』의 의성현지(義城縣誌)에 계란산 봉수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계란산 봉수는 현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북쪽의 마산 봉수에 응하고, 남쪽의 고성산 봉수에 응한다[鷄卵山烽燧 在縣北十五里 北應馬山 南應古城山]” 고 하였다. 그리고 1871년 간행된 『영남읍지(嶺南邑誌)』의 의성현지(義城縣誌)에도 이와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다만 1864년경에 간행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의성현의 봉수 가운데 “계란현 봉수는 북쪽 10리에 있다[雞卵峴 北十里]” 라고 간단히 기록되어 있다. 아무튼 이와 같은 계란산 봉수터와 관련된 기사를 통해 유추해 볼 때 계란산 봉수터를 감싸고 있는 상화리 산성터 역시 조선 후기까지는 산성으로서 기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치]

상화리 산성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 산27, 산28, 산45-1, 산80-1, 산80-2, 산81, 산83, 산85, 산87, 산90 일원에 위치한 해발 292.2m의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주능선과 가지 능선을 따라 약 750m 정도의 길이로 축조되어 있다. 상화리 산성터 유적은 행정 구역상 단촌면 상화리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 상화리 뿐만 아니라 하화리·병방리·관덕리 등 여러 마을로부터 골짜기를 따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위치이다. 성의 북단에서는 북서쪽으로 멀리 미천(眉川)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2004년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지금까지 발굴 조사는 없었다.

[현황]

상화리 산성터는 불규칙한 형태의 테뫼식 산성이다. 이 산성은 평탄지에 가까울 정도로 고저 차가 거의 없는 4~5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돌아가며 축조되었는데, 석재를 사용하지 않고 능선과 경사지를 삭토하여 성벽 부분을 조성하였다. 이처럼 평탄하게 정지된 성벽부는 폭 1~1.5m, 높이 1m가량의 여러 단으로 구성되며 전체 길이는 약 2㎞ 정도이다.

한편 상화리 산성터 유적이 위치한 일대는 해발 300~400m 내외의 산지가 발달한 곳으로서 대부분 삼림이 우거져 있는 상태이다. 산성터 일대도 역시 이와 같이 숲으로 덮여 있어 외관상 산성의 형태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성벽을 이루는 일부 평탄한 구간은 과거 경작으로 인하여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다. 산성은 남단에 있는 계란산 봉수터를 둘러싸고 있는데, 석축으로 된 봉수터는 비교적 그 흔적이 잘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상화리 산성터 유적은 상화리 계란산 봉수터와 함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상화리 산성터에 대한 기록은 전해 오는 바 없지만 계란산 봉수는 조선 후기의 여러 기록에 나타나고 있어, 근대적 통신 제도가 도입되기 전까지 계란산 봉수와 함께 중요한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의성군 내에는 이처럼 산성과 같이 있는 봉수로서 봉양리 산성터봉양리 대암산 봉수터, 치선리 산성터치선리 봉수터, 팔성리 고성산성 터팔성리 고성산 봉수터 등이 있는데, 이들이 갖는 의미를 학술적으로 다시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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