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342
한자 渭中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마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동에서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8.8㎢
가구수 142가구
인구(남, 여) 291명[남자 139명, 여자 152명]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병합된 경상북도 비안군 단서면 위성동, 주중동, 용암동, 주하동, 도호동에서 위성과 주중의 이름을 따서 위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연 마을 저곡(渚谷)은 흥양 이씨가 정착하면서 마을 앞에 위천이 깊게 흐른다고 불렀는데 지곡으로 변절되어 불려 왔다. 주미(住尾)는 구씨·나씨·정씨·이씨 등이 마을을 개척하여 정착하면서 마을 뒤 회봉산에서 내려다 본 아름다운 위천과 단주령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주미라고 하였는데, 이후 지미로 변음되었다 한다. 용암[불당골]은 용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용암이라 하였다. 조선 중기까지 마을에 용암사라는 사찰이 있어 불당골이라고도 부른다. 김경진이라는 선비가 부모를 모시고 용고개 밑에 처음 정착하였다가 도적의 침입을 자주 받아서 좌우 산세가 청룡·백호로 잘 감싸고 있는 이곳으로 옮겨 살았다고 한다. 대나무골은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경상북도 비안군 단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위성동, 주중동, 용암동, 주하동의 일부와 도호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동이라 하였다. 1988년 5월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해 위중동을 위중리로 개칭하였다.

[자연 환경]

위중 1리는 동쪽으로 안계들이 멀리 내다보는 마을로 그 앞으로 위천이 지나가고 있다. 위중 2리는 북쪽이 훤히 내다보이고 멀리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비봉산이 수려하며, 위중 3리는 마을 뒤에는 서쪽으로 단밀면에서 가장 높은 만경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마을 앞산에는 용바위가 있다.

[현황]

위중리단밀면 남쪽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현재 면적은 8.8㎢이며, 총 142가구에 291명[남자 139명, 여자 152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남쪽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용곡리와 경계를 하고, 서쪽으로는 경상북도 구미시 도계면, 북쪽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선리단북면 이연리와 이웃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저곡, 주미, 용암, 대나무골[자바골]이 있다.

마을 북쪽으로 지방도 912호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단밀교에서 용곡리 사이에 위천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마을과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생원 구극성이 지은 나정(羅亭)이 지곡 마을의 나루 위에 있었으나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위천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안계 평야가 펼쳐져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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