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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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구암리를 ‘부처미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구암리를 부처미이라고 부르게 된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 파병된 명(明)의 장수 이여송이 조선에서 인재가 나지 못하도록 정기를 끊으려 했다는 설화와 결부되어 전하고 있다. 부처미이는 돌부처가 길가에 있던 곳으로 1881년 『대동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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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질그릇이나 사기 그릇, 기와 따위를 굽는 가마가 있던 옛터. 가마터는 인간이 토기를 발명하여 사용한 신석기 시대 이래로 남겨지기 시작한 유적이다. 선사 시대의 가마터 유적은 주로 토기를 굽던 토기 가마와 숯을 만들기 위한 사용한 숯가마가 있으며, 역사 시대로 접어들면서 토기 가마뿐만 아니라 자기 가마, 옹기 가마, 기와 가마를 비롯하여 쌈을 찌는 삼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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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의성군 옥산면의 상감동, 하감동, 옥계동을 병합하여 감동과 옥계의 이름을 따서 감계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하감(下甘)은 감바대 아래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감바대는 본래 강바다로 불리었는데 홍수가 날 때마다 강물이 흥건히 고여 있다가 빠지지 않고 물로 잠겨 있어서 그렇게 불렀고 이후 변음되어 감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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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희석(姜凞碩)[1881~1939]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출신으로, 농업에 종사하던 중, 38세의 나이로 안평면 석탑리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군 안평면 석탑동 교회 교인이었던 강희석은 송내동 교회 권수백(權秀伯) 조사(助事)의 권유로 같은 교회 교인 김복식(金福植)·정금동(丁今同) 등과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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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예술, 또는 기술이 낳은 구축물. 건축은 인간적 요구와 건축 재료에 의해 실용적·미적 요구를 충족시키도록 만들어진 구조물을 말하며, 단순한 건조 기술에 의하여 만들어진 구조물은 ‘건물(建物)’ 이라고 한다.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교육·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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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된 전반적인 활동과 영역. 일반적으로 경제·산업은 인간의 공동 생활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회 관계와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 전반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보통 농업·공업·수산업·임업·광업 등이 포함되지만, 넓게는 생산과 직접 관계되지 않는 상업·금융업·서비스업 등도 포함된다. 의성군의 대표적인 경제·산업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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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지석묘(支石墓)]은 청동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무덤으로, 돌널 무덤[석관묘(石棺墓)], 독무덤[옹관묘(甕棺墓)]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무덤은 주거 지역과 좀 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정착 생활과 함께 사용된 무덤 양식이므로, 하천가의 구릉 지대나 평야 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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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고인돌[지석묘(支石墓)]은 청동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무덤으로, 돌널 무덤[석관묘(石棺墓)], 독무덤[옹관묘(甕棺墓)]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무덤은 주거 지역과 좀 떨어진 별도의 공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정착 생활과 함께 사용된 무덤 양식이므로, 하천가의 구릉 지대나 평야 지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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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단촌면사무소에서 의성군 점곡면, 옥산면을 잇는 지방도 914호선를 따라 약 2.5㎞ 지점의 동쪽에 등용사가 있다. 고분 떼는 등용사의 맞은편 남쪽 능선에 위치한 늠메골 일대에 밀집 분포한다. 능선 정상부의 남쪽으로는 높은 산을 배경으로 골짜기가 깊으며 북쪽 능선 말단부는 등용사 및 지방도 914호선 일대로 넓은 평야가 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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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있는 선사 시대~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 관덕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488-1전에 있다. 의성읍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안동 방향으로 8.5㎞ 가다가 단촌면 소재지에서 점곡면 방향으로 2.5㎞ 정도 이동하면 단촌면 관덕 2리 마을에 이른다. 관덕리 유물 산포지는 마을과 등룡사 사이에 있는 밭에 있다. 유물 산포지의 서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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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광물을 채굴·제련하는 산업과 원료를 가공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산업을 통칭하는 용어. 일상생활에 필요한 자재와 원료를 얻기 위해 지하자원을 캐내는 광업과 이를 원료로 하여 가공하는 공업을 통틀어 광공업이라 한다. 인류의 생활은 석기 시대를 출발하여 청동기 시대 및 철기 시대로 이어져 왔으며 기술 혁명과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첨단 과학 문명을 꽃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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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하천이나 철도, 도로 등과 같은 지형지물의 위로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구조물. 의성군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위치한 지역으로, 북쪽은 안동시와 예천군이 인접하고, 동쪽은 청송군, 남쪽은 군위군과 구미시, 서쪽은 상주시와 접해 있다. 울진군을 제외하면 도내의 모든 시군과 직선거리 80㎞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의성군은 예부터 참(站)이나 원(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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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마을 구암에서 유래되었다. 구암[거북 바우]은 1450년경 서양우라는 사람이 이주하여 새로운 땅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새터[新峴]라고 이름하였다가, 그 후 마을 뒷산 산등성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다고 하여 새롭게 이름 붙였다. 실바우[시루 바위]는 1630년경 안동 김씨 김만진이 이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 어귀에 시루떡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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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구암리에 있는 재실. 구암리 금당재는 남호(南灝), 남신충(南藎忠), 남추(南樞), 남해준(南海準)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영양 남씨 문중의 재실이다. 의성읍에서 점곡면 방향으로 지방도 914호선을 따라서 가다 보면 길 좌측에 구암리 구암 마을이 있다. 구암 마을 뒤편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구암리 금당재는 1750년경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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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승헌(權承獻)[1898~198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출신으로, 점곡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 지방 3·1 운동에서 양반 유생이 주도한 시위는 봉양면 사부동과 점곡면 사촌동, 춘산면 금오동 등 세 곳이다. 특히 점곡면 사촌동 시위는 유림 집안인 안동 김씨 청년들이 나서서 시위를 이끌었다. 점곡면소재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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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 이후 해방에 이르기까지 의성 지역의 역사. 근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행정 구역은 갑오개혁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개편되었다. 1895년 음력 윤 5월 1일에 과거의 현령을 군수로 고치고 경상북도 의성군과 비안군으로 개편하였으며, 안동 관찰부 관할이 되었다. 1896년 8월 4일에는 이를 고쳐 의성군과 비안군으로 개편하였다. 1906년 경상북도 상주군의 단밀면·단동면·단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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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봉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금봉 저수지는 옥산면 소재지에서 12㎞ 이동하여, 지방도 930호선 동쪽에 바로 연접해 있는 달곡천 하류에 형성되어 있는 농업용 1종 저수지이다. 주변으로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백자리·길안면 금곡리와 옥산면에 걸쳐서 황학산이 있다. 상류에서 0.7㎞ 지점에 금봉 자연 휴양림이 있다. 금봉 저수지는 옥산면, 점곡면, 단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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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금동, 의방동을 병합하면서 금봉동이라 하였다. 금동은 쇠골이라고도 하는데, 김동한이 개척하였으며 금붙이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었다 하여 쇠골이라 이름 붙였다고 하며, 의방(義坊)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의 침입에 피하여 의병들이 이곳에서 몸을 피했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갈전(葛田)은 장동석이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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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마을 금학동(金鶴洞)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황금빛 학이 날아와서 서식하자 마을 주민이 경사스러운 일이라 하여 이 마을을 금학동이라고 하였다. 자연 마을로 신고는 새고무실이라는 뜻으로 어떤 선비가 본래 고무실에서 살다가 이곳에 정착하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고 하며, 성골[城谷]은 1360년 고려 공민왕이 반신들의 난을 피하기 위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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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부문(金富文)[1887~195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된 점곡면 만세 시위는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켜 나갔다. 여기에 윤암동의 영양 남씨, 송내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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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위창(金渭昌)[1900~1941]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처음 송내동 교회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켜 나갔다. 교회의 권수백 조사는 사촌동의 김태호 등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같은 동네 김위창을 비롯 김점득·김유경·김수석·김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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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호문(金好文)[1887~1942]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송내동 교회 교인이자 김해 김씨 일족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부친 김수배와 함께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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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희문(金喜文)[1889~1970]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다.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사촌동의 안동 김씨 청년들이 시위를 확산시켰으며, 윤암동의 영양 남씨,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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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남규우(南圭佑)[1889~1967]는 남오대(南梧大)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전개된 점곡면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만세 시위는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계속되었는데, 처음 송내동 교회 권수백 조사 등 교인들이 시위의 초석을 마련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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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의성 지역의 학자.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명원(明遠), 호는 소계(小溪). 아버지는 남영환(南永煥)이며, 어머니는 풍산 유씨(豊山 柳氏)로 유겸조(柳謙祚)의 딸 이다. 부인은 한양 조씨(漢陽 趙氏)로 조지복(趙志復)의 딸이다. 외가인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면 하회리의 충효당(忠孝堂)[서애 종택]에서 태어났다. 남만회(南萬會)[1826~1886]는 어려서 총명하고 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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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영양.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의 후예이다. 남승순(南勝淳)[1857~1925]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서 출신으로, 1919년 3월 19일 점곡면 사촌동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점곡면 사촌동(沙村洞) 만세 시위의 소식을 듣고 장남 남규우(南圭佑)·황금종(黃金鍾)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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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서 토지 등 자연 환경을 이용하여 사람에게 유용한 자연 자원을 생산하는 경제 활동. 농업은 인류가 지구상에 살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정착 산업이며,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여 농업을 1차 산업의 중심적 위치에 두고 있다. 의성 지역의 지형 조건이 동쪽은 산지가 많고 지세가 높으며 한서의 차가 심해 과일 재배에 유리한 반면 서쪽은 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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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사방을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건물.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부 문헌에서 누(樓), 정(亭)을 비롯하여 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누정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누정은 사방의 벽을 틔우고 언덕이나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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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사방을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은 건물. 누정(樓亭)은 누각과 정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부 문헌에서 누(樓), 정(亭)을 비롯하여 당(堂)·대(臺)·각(閣)·헌(軒) 등을 포함하여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에 누정의 기능이나 역할에 대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누정은 사방의 벽을 틔우고 언덕이나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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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 느티나무는 의성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마을 어귀에 정자 식물로 많이 심어 놓고 있다. 느티나무는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규목(槻木)이라고도 부른다. 산기슭이나 골짜기, 마을 부근 등 해가 잘 드는 곳이나 토양에 수분 함량이 다소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가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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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서 국제 결혼으로 가족을 이룬 가정. 다문화 사회는 시민 혹은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사회·경제·정치·문화적 권리를 취득하고 향유하는 데 인종과 민족이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는 사회를 뜻하며, 다문화 가정은 서로 다른 국적, 인종, 문화를 가진 남녀가 이룬 가정이나 그런 사람들이 포함된 가정을 의미한다. 결혼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다문화 가정의 규모는 2008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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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붉은 돌이 많은 곳이라 하여 단촌면(丹村面)으로 불렀다고 한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의 일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의 일부,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이라 하고 장림동·세촌동·하화동·상화동·관덕동·병방동·후평동·구계동·방하동 등 9개 동으로 개편하였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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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 운동. 외세의 조선 침탈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비롯된 반제 자주화 투쟁은 일제의 한국 침략에 대한 항일 독립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항일 독립 운동은 강제 병합 이전의 의병 항쟁과 계몽 운동 등 양대 흐름으로 전개되었고, 병합 이후에는 새로운 독립 운동의 이념 수용에 따른 민족 대 사회주의의 양대 흐름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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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점곡면 소재지의 동쪽이 되기 때문에 동변이라 하였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동 이름이 되었다. 자연 마을 걸마골[乞馬谷]은 1670년 아주 신씨가 마을을 개척 당시 마을 지형이 말 모양으로 생겼으며 또한 물이 매우 귀했던 마을이라 말이 목마른 형상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단의실은 송고 박윤성의 9대손 박종량이 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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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동변리 점곡 저수지 안골에 있는 장흥 마을의 동쪽으로 약 300m 되는 산 기슭에 있는 절터로, 고려 시대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이곳에는 깨진 탑의 기단석 일부가 남아 있을 뿐 다른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탑을 옮기기 전까지는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마을 쪽으로 30m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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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병합된 지역 노매동, 우평동, 누곡동 중에서 노매와 누곡의 한 글자씩을 따서 매곡동이라 이름을 붙었다. 자연 마을 노매(老梅)는 1510년 신한이 다래 넝쿨로 뒤덮인 이곳을 개척하였을 당시 산기슭에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붙였다고 한다. 우평(牛坪)은 16세기 중엽 이득수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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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고(鳴皐)는 학(鶴)이 마을 앞 언덕에 와서 자주 울고 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는 1430년 경 신은석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뒷골에 큰 못이 있었다 하여 큰목골로 불렀는데, 이후 개칭하였다 한다. 자연 마을 옥곡[옥실]은 1370년 무렵 오강제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청옥골[靑玉谷]에서 많은 옥이 나왔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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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있는 봉수(烽燧)터 유적. 명고리 봉수터 유적은 의성군 단촌면 상화 1리와 점곡면 명고 1리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400m 봉우산 정상에 위치한다. 평면 형태가 방형(方形)인 석축으로 된 연대(烟臺)가 허물어진 상태로 잔존하며 주변에는 민묘(民墓)가 조성되어 있다. 현재 명고리 봉수터와 관련된 문헌 기록은 파악되지 않으며 봉수의 연결 통로는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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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언어와 문자를 매체로 표현하는 창작 활동. 의성은 옛 삼한 시대에 성읍 국가인 조문국이 자리하였던 곳으로,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우고 의(義)를 중시하는 선비 정신을 계승하여 많은 충의열사를 배출한 지역이다. 의성군에는 고려 시대 이래 조선 시대까지 수령으로 부임한 이들과 문과, 무과, 사마시에 합격한 이들이 언어와 문자를 통해 충과 효를 표현한 작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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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금봉리 솥재에서 발원하여 북서류 하다가 점곡면에서 서쪽으로 흘러 단촌면 세촌리에서 안동시 일직면으로 이어지며 안동시 남후면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하천. 미천은 하천이 굽이치는 모양이 눈썹 모양과 같다고 하여 미천(眉川)이라 불린다. 낙동강은 숫물, 미천은 암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조선 시대 우남양이라는 선비가 평소에 물을 마실 때 암물과 숫물을 구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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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노수(朴魯洙)[1907~?]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출신으로, 1920년대 서울에서 공학회(共學會)·서울 학생 구락부·경성 청년회, 그리고 일본에서 신간회 동경 지회 등에 가입하여 항일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5년 8월 30일 의성군의 옥산면·점곡면·단촌면 청년 박명옥(朴明玉)·유시언(柳時彦)·김성윤(金成允) 등과 함께 의성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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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천수(朴千壽)[1897~1947]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사촌동(沙村洞) 만세 시위의 소식을 듣고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 계획에 참가하였다. 3월 18일 밤 9시 사촌동 동민 600~700명이 횃불을 밝히며 만세 시위를 벌였고, 다음 날에도 만세 시위가 벌어지자 박천수는 김성갑(金聲甲)·김용준(金龍俊)·신주칠(申周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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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예로부터 사용해온 토박이 언어. 방언은 그 지역의 자연 언어뿐만 아니라 생활 문화의 모습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의성 지역 방언을 지역별·세대별로 살펴보면 그 방언을 사용하는 의성 지역 사람들의 특성도 함께 나타난다. 의성 지역 방언에 나타나는 음운, 문법, 어휘는 언어 연구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의성 지역 방언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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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병방리 고분 떼는 의성군 단촌면 병방리에 위치한다. 고분 떼는 병방 마을 북쪽 뒷산에서 시작해 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성재[395.8m]를 향해 길게 뻗은 구릉에 축조되었다. 병방리 고분 떼 북쪽에는 미천(眉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미천 주위에는 후평들(後坪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후평들 건너 능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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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지방 자치 단체나 의료 기관 등이 행하는 활동. 경상북도 의성군의 보건 의료는 중앙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가 중심이 되어 보건소를 중심으로 보건 사업을 행하는 공적 영역과, 사설 의료 기관이 주가 되어 병원과 의원을 비롯한 의료 기관들 중심으로 보건 의료 행위를 하는 민간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의성군은 보건지소 신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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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분포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과 시설. 의성군의 봉수와 관련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의성군 관내 봉수 유적들은 『경상도지리지』의 의성현(義城縣)을 비롯하여 비안현(比安縣), 안정현(安貞縣), 다인현(多仁縣) 조에 나타나 있다. 의성현조에는 “영니산 봉화는 현의 남쪽 20리 정도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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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활동하는 석가모니 부처를 교조로 하는 종교.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불교 공인은 고구려 372년(소수림왕 2)이다. 그러나 가야 불교의 전래나 민간 설화 등을 고려하면 그 이전에 이미 불교는 우리나라에 포교 전파되어 있었다고 보인다. 고대 의성 지역이 포함되어 있던 신라는 527년(법흥왕 14)에 불교가 공인되지만, 이 보다 훨씬 이전인 눌지왕(訥祗王)[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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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긴 골짜기에 위치하여 사실 또는 새실, 사곡이라 하였다 한다. 조선 시대에 본래 의성군 사곡면이었는데, 순조 때 내사면(內舍面)과 외사면(外舍面) 2개 면으로 갈라서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2개 면을 병합하여 다시 사곡면이라 하고 신감동·양지동·음지동·매곡동·공정동·화전동·신리동·작승동·토현동·오상동 등 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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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자연 마을 사미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었다. 사미[새미]는 비봉산 중턱에 옛 절터가 있고 그 옆에 약수터가 있어 샘이 있는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자연 마을 봉미(鳳尾)는 마을의 지형이 봉황새의 꼬리 모양과 같다고 또는 봉황새가 날아가다가 꼬리를 떨어뜨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갯골[狗谷]은 앞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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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사찰은 가람(伽藍)이라고 하는데, 가람은 산스크리트어 saṃgha-ārāma의 음역인 승가람(僧伽藍)의 줄인 말이다. 사찰은 원래 석존(釋尊)의 설법을 위한 장소로서 건설되었지만, 승단이 형성됨에 따라 안거(安居)를 위한 공동의 방사(房舍) 성격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사찰은 출가 수행자들의 수행 공간이고, 갖가지 의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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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촌리는 옛날 사기점이 있어서 점곡(點谷), 점실 또는 사진, 수촌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 따르면 신라 시대 때 나(羅)씨, 손(孫)씨에 이어 1392년 김(金)씨가 들어와 서방(西方)을 막기 위하여 서림을 조성하고 동네 이름을 중국 사진촌(沙眞村)을 모방하여 붙였다고도 한다. 자연 마을 비대(比大)는 18세기 초 이참봉(李參奉)이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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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주민의 생활 향상과 사회 보장을 위한 광범위한 사회 정책. 한국 사회에서 사회 복지를 위한 법률의 체계적 정비는 1961년 12월 30일 공적 부조의 가장 핵심이 되는 법률로 「생활 보호법」이 제정·공포되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이후 1963년 「의료 보험법」이 제정되었으며 1978년에는 「의료 보호법」이 제정·실시되었다. 1997년 IMF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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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3월 12일~4월 초순까지 의성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 운동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린 가운데 민족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계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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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상리리 충렬사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김홍술(金洪術)[?~929]을 기리기 위해 김석겸(金錫兼) 등 읍민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김홍술은 나말 여초 시기인 922년 신라 진보성(眞寶城)의 장군으로 있다가 고려에 투항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하여 의성부(義城府) 성주(城主)로 임명되었으나 후백제의 군주인 견훤(甄萱)과의 전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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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상리리에 있는 사당. 상리리 충효사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효사재(孝思齋) 이탁영(李擢英)[1541~1610]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이탁영은 1541년(중종 36) 의성현 지곡리(芝谷里)[현 의성읍 상리동 579]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의성에서 생활하며 오랜 기간 경상도 감영에서 근무하였다. 문장력이 뛰어나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임진왜란 중에 소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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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화(上禾)란 마을 앞 들이 넓고 기름져 특히 벼농사가 잘되는 곳이고 큰 소(沼) 위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수일(水逸)은 장마로 대수가 저도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다른 이름인 화동(禾洞)은 들이 넓고 기름져 특히 벼농사가 잘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적(新笛)은 경주 최씨가 정착하면서 숲을 개간하고 나서 기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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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와 동변리에 걸쳐 있는 산. 생해봉은 『의성군 지명 유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생매봉이라고도 표기되어 있기도 하나, 『의성 군지』, 「1:50,000 지형도」 등에서 생해봉으로 표기되어 있어 생매봉이라기보다 생해봉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생해봉은 높이는 431.0m이며, 미천으로 유입되는 소지류 하천의 발원지이다. 생해봉의 기반암은 중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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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서변은 점곡면의 서쪽 지역에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또한 큰터골[태동]에서 흐르는 개울의 서쪽에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자연 마을 큰터골은 북동쪽 큰 골짜기의 이름인데 약 150년 전에 풍산 유씨가 정착하면서 마을 이름을 태동이라고 불렀다 한다. 각산[각성]은 점곡면 면소재지 남동쪽 일부의 지형이 짐승의 뿔같이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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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송내는 본래 장각(獐角)골로 불리었는데, 1620년경 삼척 임씨(三陟 林氏)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뒤 2개의 산골이 노루의 뿔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였다 한다. 그 후 임씨가 떠나고 조계승(曹溪僧)이 마을 앞에 소나무를 심어 송림이 우거지게 되니 송내(松內)라고 불렀다 한다. 한편 위치가 노송소[노송소모랭이] 안쪽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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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송내리 고분 떼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산95에 있다. 의성읍에서 국도 5호선을 타고 안동 방향으로 8.5㎞ 가량 가면 단촌면 소재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포장도로를 따라 점곡면을 향해 6㎞ 가량 가다보면 송내 마을에 이르게 된다. 고분 떼는 송내 마을 서북쪽에 있는 높이 100m 미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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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에 있는 조선 시대 유물 산포지. 송내리 유물 산포지는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산97에 있다. 의성읍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경상북도 안동시 방향으로 8.5㎞ 가면 단촌면 면소재지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동쪽 점곡면 방향으로 포장 도로를 따라 6㎞ 이동하면 점곡면 송내리의 송내 마을에 이른다. 송내리 유물 산포지는 송내 마을 서쪽 구릉 하단부의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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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숙박 서비스 제공 시설. 의성군은 전형적인 농업 지역이면서 ‘의로운 고장’, ‘선비의 고장’이기도 하다. 풍요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자연 경관과 역사적 유적, 선비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의성군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늘어나는 관광객을 유치하고 수용하기 위해 의성군에서는 현대적 숙박 시설 이외에도 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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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숙박 서비스 제공 시설. 의성군은 전형적인 농업 지역이면서 ‘의로운 고장’, ‘선비의 고장’이기도 하다. 풍요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자연 경관과 역사적 유적, 선비의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의성군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늘어나는 관광객을 유치하고 수용하기 위해 의성군에서는 현대적 숙박 시설 이외에도 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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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생육하고 있는 식물의 종류. 경상북도 의성군 일대의 산지에는 대부분 소나무가 우점하고 있다. 그 외 갈참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아카시아나무, 느티나무, 산수유나무 등이 분포한다. 도로를 따라서 아카시아나무, 은행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하천변을 따라 굴참나무와 칡, 돼지풀, 갈퀴덩굴, 다래, 느릅나무, 산수국, 개암나무 등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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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상신동·하신동과 원계동의 이름을 따서 신계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상신(上新)은 산골짜기를 따라 좁게 펼쳐진 들판에 한 집 두 집 모여 형성된 촌락으로 새골의 위쪽에 있다고 윗새골이라고도 불렀으며 차츰 상신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하신(下新)은 상신 아래 있어서 붙여졌다 한다. 새골[원기, 원계]은 신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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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을 진행하면서 신리의 이름을 따서 신리동이라 하였다. 신리는 본래 새말[新里]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자연 마을 연곡(蓮谷)은 1600년경 김해 김씨가 정착한 곳으로, 마을 지형이 연꽃이 물에 뜬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곡은 마을 앞에 우물을 파면 꽃잎이 뚫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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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신주칠(申周七)[1890~1938]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9일 점곡면에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점곡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은 3월 18일 오후 9시 사촌동 오후 11시경 서변동 만세 시위로 이어졌고, 3월 19일에는 다시 사촌동의 만세 시위로 이어졌다. 신주칠은 이때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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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마을 실업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실업(實業)은 조선 시대 김기량이라는 선비가 안동에서 이주하여 개척하였는데 머루, 다래 넝쿨이 많은 것을 베어내고 개척하여 실업(實業)이라고 하였다 한다. 자연 마을 댓골[竹洞]은 조도섭이란 참봉이 이곳에 피난 와서 개척할 때 계곡에 대나무가 많아 댓골이라 불렀으며, 예부터 이 마을에는 우물을 파도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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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자연 마을 실업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실업(實業)은 조선 시대 김기량이라는 선비가 안동에서 이주하여 개척하였는데 머루, 다래 넝쿨이 많은 것을 베어내고 개척하여 실업(實業)이라고 하였다 한다. 자연 마을 댓골[竹洞]은 조도섭이란 참봉이 이곳에 피난 와서 개척할 때 계곡에 대나무가 많아 댓골이라 불렀으며, 예부터 이 마을에는 우물을 파도 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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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황룡리 구사지에서 발원하여 명고리를 거쳐 사촌리에서 미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옥곡천은 미천의 지류 하천으로 의성군 점곡면 황룡리 구사지에서 발원하여, 점곡면 황룡리와 명고리를 따라 북류하다가 점곡면 사촌리 가로숲 부근에서 미천으로 합류한다. 옥곡천은 4개의 3차수 하천이 만나 4차수 하천을 이루는 하천으로, 길이는 7.7㎞이며, 하폭은 30m 미만이다. 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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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윤암리라는 이름은 1914년 윤곡동, 서암동, 차동을 병합하면서 윤곡과 서암의 한 글자씩을 따서 붙여졌다. 자연 마을 윤곡동은 1652년 남해준(南海準)과 그의 아들 진주 목사(晉州 牧使) 남몽뢰(南夢賚)가 점곡면 월촌(月村)에서 이주한 마을이다. 옛날 중국 상(商) 탕왕을 보좌하여 하(夏)의 폭군 걸왕(桀王)을 타도한 성현 이윤(伊尹)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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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고려 시대~조선 시대 가마터. 윤암리 가마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각골 마을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다. 이곳은 윤암리 고분군이 분포하는 곳이기도 하다. 가마터 주변에서 채집되는 와편의 형태와 문양으로 볼 때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걸쳐 운영된 기와 가마터로 추정된다. 윤암리 가마터에 대한 변천 과정은 현재로서는 자세히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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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떼. 점곡면 윤암리에 위치한다. 점곡면 소재지에서 점곡교를 지나 옥산면 소재지를 잇는 지방도 79호선 중간 지점의 윤암리 각골 마을에서 남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두 개의 구릉 상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고분군의 북쪽에는 미천(眉川)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강 양쪽으로 충적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고분군의 동쪽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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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개항기 가옥. 윤암리 남종기 가옥은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의성길안로 1075[윤암리 438]에 있다. 의성읍에서 점곡면으로 가는 지방도 914호선을 따라 가다 보면 윤암리 윤곡 마을의 길가에 의성 소계당이 나온다. 의성 소계당에서 점곡면 방향으로 약 400m 정도 더 가다 보면 도로 변 좌측에 윤암리 남종기 가옥이 동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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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생산되는 단맛과 매운 맛을 고루 갖춘 고추. 고추는 임진왜란을 전후 하여 중국이나 일본을 통하여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추에 대한 기록은 1614년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일본을 거쳐 온 것으로 왜겨자라는 표현이 발견된다. 그러나 일본 측 기록인 『대화본초(大和本草)』·『물류칭호物類稱呼』·『성형도설成形圖說』 등에는 우리나라 혹은 남만에서 온 것이라 기록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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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는 민중이 널리 부를 뿐만 아니라, 그 음악적·문학적 성격도 민중적이다. 민요는 생활상의 필요성에서 창자가 스스로 즐기는 노래이다. 악곡이나 박자, 사설이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아서 특별한 기교나 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생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단순히 민중의 생활을 노래하는 차원을 넘어서 노동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생산적인 노래라는 특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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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사과를 재배하는 농업인을 회원으로 하는 영농 단체. 의성 사과의 주산 지역은 산간 농촌 지대로 다른 지역보다 한서의 차가 심하고 일조량이 풍부하며, 여름철에 평균 기온 24°C로 사과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껍질이 얇고 단단하면서 과즙이 많아 맛과 향이 좋으며, 당도가 높아 특히 비타민 C가 풍부하여 많이 찾는 과일이다. 과일 크기가 균일하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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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가톨릭 안동 교구 소속의 성당. 의성군 동부 지역에 천주교가 처음 전파된 것은 1934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의성군 의성읍 후죽동의 김경조 가족과 의성군 의성읍 도서동의 이복우 가족이 의성 공소의 신자였다고 한다. 이듬해인 1935년 대구 명치정에서 정영수와 홍성술이 각각 도서동과 의성군 봉양면 도리원으로 이사를 오면서 4가구의 20명에 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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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한 군. 의성군은 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하며, 삼한 시대부터 부족 국가인 조문국이 자리하였던 곳으로 우리 고유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고 꼿꼿한 선비 정신을 면면히 이어와 수많은 충의열사를 배출하였다. 동쪽은 경상북도 청송군, 남쪽은 경상북도 군위군·구미시, 서쪽은 경상북도 상주시, 북쪽은 경상북도 안동시·예천군과 각각 인접하고 있다. 수리적 위치로는 동경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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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효선리에 있는 농민 단체. 의성군 농민회는 농민 대중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제반에 걸친 어려움을 농민 스스로의 단결과 지속적 노력을 통해 해결하고 농민의 권익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78년 우영식, 진상국, 최재호 회원을 중심으로 의성군 농민회의 전신인 가톨릭 농민회 쌍호 분회가 설립되었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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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원당리에 있는 의성 지역 관할 상하수도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 의성군 상하수도 사업소는 의성 지역의 정수와 급수, 하수 관리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5년 의성군청 도시과에 상하수도계를 설치하고 정수장이 설치된 의성읍, 단촌면, 점곡면, 봉양면, 금성면, 안계면, 다인면 등에도 상하수도 관련 계를 총괄했다. 1998년 의성군 상수도 사업소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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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에 있는 의성 군민의 대의 기관. 의성군 의회는 주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 선거 등에 의해 선출된 의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의성군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이다. 지방 의회는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제헌 『헌법』 96조 2항에 근거하여 1949년 7월 4일 「지방 자치법」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제도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지만, 6·25 전쟁이 발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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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에 있는 의성 지역 관할 행정 기관. 중앙 정부와 경상북도 광역 자치단체로부터 위임받은 업무와 의성 지역 고유의 행정 및 민원 업무 수행을 위해 설립하였다.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따라 안동 대도호부 의성현이 안동 대도호부 의성군으로 개칭되면서 의성군청이 설치되었으며 1896년 8월 4일 경상북도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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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원래 문소(聞韶)로 불러오다가 929년(태조 12) 후백제 견훤이 군사 5,000명을 거느리고 의성부(義城府)를 공격하여 왔을 때, 이를 맞아 힘껏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홍술(洪術)의 충절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고려 태조(太祖)는 "의(義)로운 성(城)" 곧 의성(義城)이라 명명(命名)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본래는 조문국(召文國)에 속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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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의성읍은 의성군청 소재지로서 여러 행정 기관이 위치한 행정의 중심지이며, 도·농 복합 형태의 소규모 도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시가지 동남부에 오토산이 솟아 있어 사곡면·금성면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에는 구봉산, 북쪽은 점곡면·단촌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읍의 중앙에는 남동쪽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남대천이 길게 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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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재(書齋). 의성 이계당은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1620~1681]가 1651년(효종 2)에 건립하여 강학하던 서재이다. 남몽뢰는 1642년(인조 20) 식년시 생원 3등 4위로 합격하였으며, 1651년 식년시 병과 1위로 문과 급제하였다. 이후 예조 정랑·진주 목사 등을 지냈으며, 1666년(현종 7) 예제 개혁을 상소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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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의성군은 경상북도 중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은 경상북도 청송군, 남쪽은 경상북도 군위군과 경상북도 구미시, 서쪽은 경상북도 상주시, 북쪽은 경상북도 안동시·예천군과 각각 인접하고 있다. 내륙 지방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행정 구역은 의성읍·단촌면·점곡면·옥산면·사곡면·춘산면·가음면·금성면·봉양면·비안면·구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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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입암리 선바위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옥산면 입암리 선바위 마을 북서쪽 350m 지점인 위천(渭川) 동쪽 자락에 위치한다. 선바위 마을 동쪽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에 고분군이 있다. 입암리 고분 떼 서쪽에는 위천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현재는 이 일대가 개간되면서 강 양안으로는 ‘전평들’과 ‘비덕들’이 펼쳐져 있다. 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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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위치한다. 경상북도 내 다른 시·군과는 직선거리가 울진군을 제외하면 모두가 80㎞ 이내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육로상의 거리도 도로망의 발달로 점차 단축되고 있다. 또한 중앙선 철도가 금성면, 의성읍, 단촌면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중앙고속도로는 봉양면, 안평면을 통과하면서 봉양면 도원리에 의성 IC가 설치되어 있다. 의성 지역에는 예부터 비안현, 단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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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일어난 태풍·홍수·산사태·해일·폭설·가뭄·황사 등의 이상 기상 현상과 지진·화산 등의 자연 현상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재해. 한반도의 경상북도의 내륙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의성군은 낙동강의 지류 하천인 위천과 쌍계천이 가로지르고 있어 여름철 집중 호우나 태풍으로 인한 풍수해를 입기도 한다. 또한 하천의 유로가 짧고 겨울철 강수량이 부족하여 봄철에 가뭄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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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산업 중 누에를 사육하여 고치를 생산하는 업종. 잠업은 고대로부터 의복을 생산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중요한 산업의 하나로 발전해 왔다. 우리나라 잠업의 역사는 삼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미 이때부터 양잠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삼국 시대에도 고관의 의복이 거의 비단으로 지어졌을 정도로 양잠이 크게 장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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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인공 저수 시설. 전통 시대 의성 지역의 저수지 관련 기록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각종 관찬 지리지와 조선 후기 이후의 읍지류(邑誌類)에서 확인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보통 ‘제언(堤堰)’ 항목이 설정되어 있다. 지금의 의성군은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 의성현(義城縣)·비안현(比安縣),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인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醴泉)]의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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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흥(全興)은 1914년 무학동, 전대동, 흥동, 진고동, 상진동, 광전동 일부를 병합하면서 전대와 흥동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전대동은 1592년 최영출이란 선비가 개척하였으며 그 후 1650년 김제한이 마을 뒷산의 산세와 지세가 전자(全字) 모양을 하고 있어 전대라고 불렀다 한다. 흥동(興洞)은 조(趙) 선비라는 사람이 개척했다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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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행정 구역. 점곡(點谷)은 의성군 지역으로서 그 지역에 사기점이 있어서 점실이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을 따라서 점곡이라고 하였다. 본래 의성군의 지역으로서 점곡면이라 하여 25개 동을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암동(龜岩洞)·명고동(鳴皐洞)·윤암동(尹岩洞)·동변동(東邊洞)·서변동(西邊洞)·사촌동(沙村洞)·송내동(松內洞)·황룡동(黃龍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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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서 같은 본관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 점곡면은 북쪽으로 경상북도 안동시와 인접하고 있어 씨족의 결속을 중시하는 안동 유교 문화권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지역의 대부분이 160~500m의 구릉성 산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미천의 지류를 따라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있어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 촌락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전통 촌락에는 우리나라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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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서변리에 있는 점곡면 관할 행정 기관. 의성군을 구성하고 있는 1개 읍 17개 면 중 점곡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점곡면사무소는 의성군 점곡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점곡은 1392년 조선 개국부터 중국 춘추 시대 공자의 고제자 증자(曾子)의 부친 증점(曾點)의 점(點)자를 따라 점곡(點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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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예로부터 사용해오면서 지역의 특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토박이 언어. 표준 국어 교육 정책은 전국을 하나의 언어, 문화, 관습 등으로 통일하는 기능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향토색 짙은 지역어에 대한 무관심과 폄하를 초래하기도 했다. 방언은 ‘살아있는 무형 문화재’이며, 지역 조상들의 얼과 문화가 한데 녹아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현대 한국어는 오랜 역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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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자연 마을 정자동(亭子洞)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정자동은 14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마을로 마을 안에 큰 나무가 많고 그 그늘이 좋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정자마 또는 정자라고도 불렀다. 자연 마을 토곡(吐谷)[거묵실]은 옛날 이곳에 샘이 없어 식수 사정이 좋지 않았으나 마을 입구에 우물을 팠더니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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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63년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의성 지역은 의성현(義城縣), 비안현(比安縣)을 비롯하여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인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醴泉)]의 속현인 다인현(多仁縣), 용궁현(龍宮縣)의 일부분[현재 안사면 지역]에 해당한다. 조선은 건국 후 전국을 8도로 나누고, 그 아래 주(州)·부(府)·군(郡)·현(縣)을 두고 지방관을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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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중리 저수지는 모운재 방면에서 동북 방면으로 1.4㎞, 지방도 79호선 일직 점곡로 북쪽으로 600m 지점에 위치해 있는 농업용 2종 저수지이다. 중리 저수지는 농업용수 공급을 목적으로 축조한 농업용 저수지로 1944년 1월 1일 착공하여 1945년 12월 30일 준공하였다. 총 공사비는 4만 원이 소요되었고, 국고 보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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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읍 후죽리에서 옥산면 신계리를 거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과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을 연결하는 일반 지방도. 지방도의 노선 번호는 남북 방향은 홀수, 동서 방향은 짝수를 부여한다. 3~4자리 번호를 부여하며, 도별 고유 번호를 사용하는데 경상북도는 3자리이며 첫째 자리는 9를 사용한다. 또한 남북 방향 도로는 서쪽부터, 동서 방향 도로는 남쪽부터 번호를 부여한다.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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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가산리에서 단촌면 구계리를 거쳐 경상남도 창녕군과 경상북도 안동시를 연결하는 국가 지원 지방도. 지방도 79호선은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과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을 연결하는 도로로, 총 길이는 183,811㎞이다. 노선은 경상남도 창녕군-경상북도 고령군-경상북도 칠곡군-경상북도 군위군-의성군-경상북도 안동시로 연결된다. 도로의 노선 번호는 남북 방향은 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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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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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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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지표를 구성하는 암석이 풍화·분해되어 생산된 흙. 의성군에 분포하는 토양은 암석이 풍화되어 광물질화되는 과정에 놓여 있는 물질로서 공기, 물, 생물 등에 의하여 형성된다. 암석이 제자리에서 풍화되어 토양화된 정적토와 풍화물이 운반·퇴적된 충적토로 구분될 수 있는데, 정적토는 산지나 산지 사면에 주로 분포하며 충적토는 하천 양안에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토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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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수하고 특별한 산물. 지역마다 지형, 기온과 강수량에 차이가 있고 토질이 달라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은 특산물이 생산된다. 특히 한국은 예부터 지역성이 강하여 지방 특산물이 많이 생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 자치제가 실시되면서 각 지역마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지역 특산물을 브랜드화하여 경쟁력 있는 산물을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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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있는 높이가 낮고 기복이 거의 없는 평탄한 지형. 의성군은 태백산맥과 남서쪽으로 이어진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동서로 긴 분지이다. 태백산맥의 산줄기는 의성군 춘산면에서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의성군의 동부와 북부에 높은 산지를 구성한다. 반면 의성군의 남부와 서부는 남서부를 가로질러 흐르는 위천(渭川)과 쌍계천(雙溪川) 등에 의해 구릉지와 평야 지대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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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1911년 사이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포함한 전국에서 일제의 침략에 맞서 전개된 의병 항쟁. 의병 운동은 집권층이 부패하고 무능한 상태에서 외세가 침략하여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일어난 구국 운동의 대표적 형태였다. 의병 운동은 일제의 대한 제국 병합을 전후한 시기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무장 투쟁을 주도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무장 독립 투쟁의 기반을 마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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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중리리와 점곡면 황룡리를 연결하는 고개. 한티재는 북쪽의 300m 고지와 남쪽의 280m 고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낮은 안부로 높이는 235m이다. 한티재를 중심으로 동쪽 계곡은 옥곡천으로 유입되는 소하천의 발원지이며, 서쪽 계곡은 남대천의 소지류 하천의 발원지이다. 옥곡천은 북류하여 점곡면 면소재지에서 미천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한티재는 미천과 남대천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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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서 공공 문제 해결 및 공공 서비스의 생산·분배와 관련된 지방 자치 단체의 제반 활동.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성립 이후 190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행정의 주된 역할과 기능은 국가의 질서 유지에 있었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이후로는 국민의 일상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뿐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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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상전동, 하전동, 화곡동을 합치면서 한 글자씩을 따서 화전동이라 하였다. 자연 마을 상전(上全)은 16세기 중엽 의성인 김치화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온 사방이 산으로 쌓여 있는 마을로 해마다 풍년이 계속되는 골짜기라 하여 안전풍(安全豊)이라 불렀는데, 이 안전풍보다 위쪽에 있다 하여 윗전풍이라 한 데서 유래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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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금종(黃金鍾)[1871~1953]은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沙村洞) 만세 시위의 소식을 듣고 남승순(南勝淳)·남규우(南圭佑)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19일 남규우와 함께 시위 군중을 이끌고 윤암동을 출발하여 사촌동으로 몰려갔다. 밤 9시 무렵, 사촌동 도로에는 부근 주민 500여 명이 모여 중앙 도로를 오르내리며 태극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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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황룡(黃龍)이라는 명칭 유래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대곡용보(大谷龍洑)에는 청룡(靑龍)과 황룡(黃龍)이 살았는데 두 용이 크게 싸움을 하였다. 지나가던 검객이 이를 보고 궁지에 몰린 황룡을 구하기 위해 청룡의 꼬리를 칼로 친다는 것이 황룡의 목을 쳐 죽였다. 그 후 이 마을 사람들이 황룡의 혼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마을 이름을 황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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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 출신이거나 의성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우리나라에서 효(孝)의 관념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널리 알려져 있는 화랑의 세속오계에서도 효를 강조하고 있고, 『삼국유사(三國遺事)』의 효녀 지은 설화에서도 고대에 효를 중시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교도(敎導)로 서민에게까지 이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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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후평 저수지는 단촌면 후평리에 있는 2종 저수지이다. 경상북도 의성에서 안동 방면 국도 5호선을 따라 약 10㎞ 가면 단촌면 소재지에 이르며, 단촌면 소재지에서 점곡면 방면 지방 도로를 이용해 3㎞ 가면 후평교에 이르고 다리를 건너 500m 가량 가다 후평 초등학교를 끼고 좌회전하면 저수지가 나타난다. 인근에는 681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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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후평리는 고려 말 전주 이씨가 개척한 마을로서 면사무소가 위치한 들판 뒤쪽에 위치하므로 뒷들 또는 후평이라고 하였다 한다. 본래 의성군 구산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산면 명성동과 점곡면의 토일동을 병합하여 단촌면 후평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1225호에 의해 후평동을 후평리로 개칭하였다.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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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 유적. 의성읍에서 국도 5호선을 따라 안동 방향으로 8.5㎞ 가다가 단촌면 소재지에서 점곡면 방향으로 포장 도로를 따라서 5.4㎞ 가면 후평리 마을에 이른다. 고분 떼는 후평리 마을의 북쪽과 폐교된 후평 초등학교 동북쪽의 구릉 상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송내동 고분 떼와 연결된다. 2009년 10월 16일부터 2010년 1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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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후평리 김동주 가옥은 1686년에 이 참봉이 건립한 이후 9대에 걸쳐 천 석을 누렸던 지주 집안의 99칸 집이었으나, 한말에 가세가 기울어 30여 년 동안 비어 있던 것을 1932년에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구미리에 살던 김동주(金東周)가 매수하였다. 후평리 김동주 가옥은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후평길 14[후평리 1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