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읍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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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군석(金郡石)[1890~1967]은 경상북도 의성군 조문면 구련리 출신으로, 조문면에서의 3·1 운동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조문면의 시위는 대리동 교회 영수인 박낙현(朴洛鉉)과 같은 교회 집사 윤용구와 교인 윤영주·오상룡 등이 3월 18일 의성 장날 장터에서 시위할 것을 결의하여 시작되었다. 4명은 동지 규합에 나서 같은 교회의 김자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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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자룡(金子龍)[1893~1954]은 경상북도 의성군 조문면 구련리 출신으로, 의성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 조문면 대리동 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하였다. 대리동 교회 영수인 박낙현(朴洛鉉)은 1919년 3월에 대구 성경 학당에 갔다가 전국적인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급히 귀향하여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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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낙현(朴洛鉉)[1887~1957]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서 출신으로, 1919년 3월 의성읍 장날 3·1 운동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낙현은 조문면 대리동 교회의 목사로 대구 성경 학당에서 열린 사경회(査經會)에 갔다가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던 독립 만세 운동의 소식과 대구에서 일어나고 있던 만세 시위를 직접 목격하고 귀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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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있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소속 교회. 1900년대 초 의성군 의성읍 호미리에 살던 김원휘가 처가가 있는 의성군 의성읍 비봉리를 내왕하던 중 복음을 접한 뒤로 호미리 주민 김경찬, 김기화, 김천득 등에게 전도하여 함께 비봉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1908년 호미리 언덕에 초가 3칸의 기도실을 마련하여 집회하면서 의성 교회가 시작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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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재인(李在寅)[1907~1964]은 의성군 의성읍 출신으로, 1935년 1월경 의성읍 교회 청년을 중심으로 결성된 청년 면려회(靑年勉勵會)를 항일 운동 단체로 조직 개편하였다. 이재인은 의성읍 교회의 목사인 유재기(劉載奇)가 “조선 민족은 현재의 비경(悲境)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조선을 일본의 손에서 되돌려 찾아내는 일 외에는 없으며 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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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최경원(崔慶源)[1878~1965]은 의성군 조문면(召文面) 대리동(大里洞) 교회의 목사 박낙현(朴洛鉉) 등과 함께 1919년 3월 18일 의성읍 장날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최경원은 박낙현의 만세 시위 운동에 참가하기로 하고, 의성읍 도동 교회[현 의성읍 교회]의 김천특(金千特)도 동참하기로 뜻을 모았다. 최경원은 의성으로 나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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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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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