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자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044
한자 金子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구련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명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6월 3일연표보기 - 김자룡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김자룡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면 장날 독립 만세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5일 - 김자룡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음
몰년 시기/일시 1954년 4월 9일연표보기 - 김자룡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 - 김자룡 대통령 표창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자룡(金子龍)[1893~1954]은 경상북도 의성군 조문면 구련리 출신으로, 의성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18일 조문면 대리동 교회 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하였다. 대리동 교회 영수인 박낙현(朴洛鉉)은 1919년 3월에 대구 성경 학당에 갔다가 전국적인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급히 귀향하여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에 같은 교회의 김자룡을 비롯 김군석·신진수 그리고 의성 도동 교회[현 의성읍 교회] 김천특안평 석탑 교회 최경원 등과도 연락하며 뜻을 모았다. 거사 전날인 3월 17일 만세 시위 계획은 일본 경찰에 의해 사전에 탐지되었지만, 주도 인사들은 3월 18일 장터로 잠입하여 거사를 강행하였다. 김자룡은 군중의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현장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5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죄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항소하였으나, 5월 22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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