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123
한자 崔慶源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8년 8월 16일연표보기 - 최경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8일 - 최경원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장날 독립 만세 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5일 - 최경원 징역 6월형을 선고 받고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65년 2월 19일연표보기 - 최경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 - 최경원 대통령 표창 추서
출생지 최경원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활동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3·1 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경원(崔慶源)[1878~1965]은 의성군 조문면(召文面) 대리동(大里洞) 교회의 목사 박낙현(朴洛鉉) 등과 함께 1919년 3월 18일 의성읍 장날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최경원박낙현의 만세 시위 운동에 참가하기로 하고, 의성읍 도동 교회[현 의성읍 교회]의 김천특(金千特)도 동참하기로 뜻을 모았다. 최경원은 의성으로 나갔으나 경찰은 조문·의성·안평 등지 각 면의 예수교도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 운동이 벌어진다는 정보를 알아내고 아침부터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한편 일본 경찰은 시장에서 용의자 15명을 예비 검속하고, 나아가 1시 30분경 시장을 폐쇄해 버렸다. 오후 3시경 주동 인물들이 두루마기 속에 태극기를 감추고 시장으로 들어와 태극기를 군중들에게 나눠주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최경원은 동료들과 함께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시위 군중은 흩어지고 말았다.

1919년 4월 5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언도 받았고, 4월 25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었으며, 5월 22일 고등 법원에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최경원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