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 경상북도 의성 출신 또는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의성 지역 한말 의병 활동은 을미사변을 계기로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서 가장 먼저 전개되었다. 의병 부대는 의병장 김상종(金象鍾), 초모장 김수욱(金壽旭), 중군 권대직(權大稷), 선봉장 김수빙(金壽聘), 관향장 김수협(金壽莢)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유교 사상을...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여원(汝元), 호는 병애(屛崖). 율정 박서생(朴瑞生)의 7대손이다. 박충인(朴忠仁)[1565~1612]은 어려서 정랑(正郞) 김희(金喜)에게서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늙은 아버지를 업고 비안 북쪽 화장굴(花藏窟)에서 피난을 하고 있었다. 이때 병사(兵使) 이각(李珏)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출전하였다. 왜...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본관은 비안(比安). 호는 북촌(北村).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절제사를 지낸 박충인(朴忠仁)의 아들이다. 박효순(朴孝純)[1603~1645]은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영변의 부원수 신경발(申景拔)의 예하에 배속되어 있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일선 지휘관으로 적과 육박전을 직접 치르며 『병난 일기(兵難 日記)』를 남겼다. 인조(仁祖)가 상(...
1636년(인조 14)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의병이 일어난 전쟁. 조선과 여진과의 관계는 16세기 말까지 비교적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1623년(인조1) 반정 이후 집권한 인조와 서인 정권이 이전의 광해군과 달리 향명배금(向明排金) 정책을 내세우게 되면서 후금과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이에 결국 조선은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
박우(朴瑀)를 시조로 하고 박서생(朴瑞生)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의 세거 성씨. 비안 박씨(比安 朴氏)의 시조는 박우이다. 고려 시대 문하 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병산군(屛山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월성 박씨(月城 朴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관향(貫鄕)을 비안(比安)으로 삼았다. 비안현은 병산현(屛山縣)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어 비안 박씨는 병산...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에 있는 근대 이후 건립된 비석 2기. 박서생의 행적을 기록한 사적비와 병호 충렬사의 옛터임을 알려주는 유지비이다. 박서생은 야은 길재의 제자로 조선 초 다방면에서 활약한 학자로 사적비는 그의 삶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병호 충렬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박충인(朴忠仁)과 박효순(朴孝純)을 배향했던 서원이었으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자위군. 의병(義兵)이란 유사 시 자발적으로 일어나 조직된 민병을 말한다. 나라의 소집이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직한 것이므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기본적인 무기나 군량 등을 스스로 충당해야 했기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의병은 한국사의 전 시기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통 시대와 개항기 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忠)을 실천한 신하. 전통 시대에 신하에게 가장 강조하고 요구하였던 덕목은 충(忠)이다. 이 덕목은 자신보다 높은 존재인 임금을 위해 행동하고, 개인보다 국가를 위해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 따라서 충신은 왕조의 교체기나 국난의 시기에 많이 나타난다. 왕조의 운세가 다하여 기울어져도 새로운 왕조에 협력하지 않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