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311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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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島三號船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병호 |
[정의]
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출항했다 침몰 후 2011년 발굴된 난파선.
[개설]
마도3호선 은 13세기 중반인 고려 후기 나무로 만든 배이다. 발굴 위치는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이며, 2009년 마도Ⅱ지구 광역 탐사 중 선체가 발견되어 2011년 5월부터 10월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는 2009년 마도1호선, 2010년 마도2호선이 발굴되었다.
마도3호선 의 역사적 성격은 마도1호선, 마도2호선과 마찬가지로 선체에 실려 있던 목간과 죽간을 통해 밝혀졌다. 목간과 죽간은 대나무와 나무 두 가지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총 35점이 발굴되었다. 목간과 죽간을 판독한 결과 마도3호선은 1265년(원종 6)~1268년(원종 9) 사이 침몰하였다. 수취인으로 나오는 신윤화(辛允和), 유천우(兪千遇), 김준(金俊)의 관력(官歷)을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화물의 출발지는 전라남도 여수를 포함한 남부 지역이고, 최종 목적지는 당시 고려의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강도(江都)]였다.
[형태]
마도3호선 은 길이에 비해 폭이 넓어 타원형에 가깝다. 마도3호선의 잔존 길이는 약 12m, 폭은 약 8.5m다. 선체는 좌현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파묻혀 있어 우현에 비해 좌현 노출이 뒤늦게 시작되었다. 선심은 제2칸 저판으로 가장 깊은 곳이 2.8m다. 저판 5단, 외판은 좌현 10단, 우현 9단이 남아 있다. 선수와 선미, 돛대 구조도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다. 선수재는 4단의 판재로 만들어졌고 폭은 상단은 약 1.7m, 하단은 약 1m이고, 잔존 높이는 약 1m이다. 선체의 횡강력을 보강하기 위해 가룡목을 고르게 배치한 형태이다.
[특징]
마도3호선 은 마도1호선, 마도2호선과 달리 첨저형과 평저형을 혼합한 저판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마도3호선 에는 강도의 지배층에게 올리는 곡물과 먹거리가 실려 있었는데, 여수 지역 일대에서 거둔 전복과 같은 여러 고급 식재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배에 승선한 승무원들이 장기놀이에 이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조약돌도 발견되었다. 한편 마도3호선에서 발견된 목간에는 「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 「중방우번상(重房右番上)」, 「우삼번별초본소상(右三番別抄本所上)」 등의 묵서가 있어 무신정권 당시 삼별초와 중방의 운영 실태에 관한 단서뿐 아니라 고려 시대 식생활과 놀이 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마도3호선은 세계 제국 몽고에 저항하던 강도 시기 무신 정권의 지방 통제 시스템과 조운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