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31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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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鐵製甲冑 |
이칭/별칭 | 철제갑옷,철판갑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병호 |
출토|발굴 시기/일시 | 2008년 - 철제갑주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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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장처 |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 |
출토|발견지 | 죽림리 차동 2지구 9호 석곽묘 -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
성격 | 갑옷 |
재질 | 철 |
크기(높이,길이,너비) | 전동부 14.9㎝|후동부 22.2㎝|좌우 너비 최대 36.4㎝, 최소 28.8㎝|전후 너비 최대 39.3㎝, 최소 33.1㎝ |
소유자 | 국립광주박물관 |
관리자 | 국립광주박물관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죽림리 차동 유적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 갑옷.
[개설]
철제갑주 는 2008년 죽림리 차동 2지구 9호 석곽묘에서 발견되었다.
[형태]
장방형 철판 다수를 상하로 연접하여 원두정(圓頭釘)[대가리가 둥근 못]으로 고정시킨 철판 갑옷으로 횡장방판정결판갑이다. 상부가 결실되어 정확한 형태는 파악할 수 없으나 현재 상하 4단이 남아 있다. 유사한 형태의 합천 옥전 28호분의 출토품을 참고하면 흉부는 유실되고 복부 4단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판갑의 현재 높이는 전동부 14.9㎝, 후동부 22.2㎝이며, 좌우 너비는 최대 36.4㎝, 최소 28.8㎝, 전후 너비는 최대 39.3㎝, 최소 33.1㎝이다. 판갑은 후동부와 좌우 흉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후동부와 좌흉부는 옆구리 쪽에서 연접되어 있고, 우흉부는 착장 시 개폐용으로 따로 분리하게 되어 있다. 고대판[흉부 1단]과 흉부 2단은 유실되어 알 수 없다.
복부 1단은 후동부의 일부만 남아 있다. 좌동부에는 고대판의 하방부로 추정되는 철판 일부가 남아 있다. 복부 2단은 전체적으로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총 3매의 횡장방형 철판을 이용하였다. 좌흉부에 두 개, 우흉부에 세 개, 후동부에 네 개의 원두정이 남아 있다. 복부 3단은 역시 3매의 횡장방형 철판으로 구성되었는데, 복부 2단과 복부 4단의 내측에 잇대어서 원두정으로 고정시켰다.
도련판[복부 4단]은 3매의 횡장방형 철판으로 구성되었는데, 하연은 너비 0.4㎝의 철판을 ‘U’ 자형으로 접은 복륜 형태이다. 상하에는 위의 단과 연결시키기 위한 원두정을 박았는데 극히 일부만 관찰될 뿐이다.
전동부(前胴部) 중앙에 좌우 대칭되게 수직으로 만들어진 섶판은 상방부가 서로 맞붙어 있으나 하방부는 좌전 동부(左前胴部) 쪽이 약간 휘어져 있다. 좌우의 섶판은 모두 전동(前胴)을 구성하는 철판의 가장 바깥쪽에 잇대어져 있으며 원두정으로 고정하였으며 현재 세 개와 네 개의 원두정이 남아 있다.
후동부(後胴部)와 맞물리는 우전 동부(右前胴部)에는 무판이 붙어 있는데, 전동부 쪽에 4매, 후동부 쪽에 2매의 원두정이 남아 있으나 형태로 보아 동일하게 박은 것으로 판단된다.
개폐 장치인 경첩은 현재 후동부에 한 개가 남아 있으며, 상하에 각각 한 개씩 원두정으로 고정하였다. 경첩은 얇은 철판을 길이 3㎝, 너비 1.2㎝로 잘라 만들었고 무판의 경첩은 결실되었다.
[특징]
죽림리 차동 2지구 9호 석곽묘에서 출토된 철제갑주는 왜계 갑주(倭係 甲冑)로 평가되는데, 여수 지역과 가까운 고흥군의 고흥 길두리 안동 고분에서 출토된 왜계 갑주와 유사성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