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873 |
---|---|
한자 | 麗水湖左水營守城創設事蹟碑 |
영어의미역 | Stele of Kim Yeongsu in Yeos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 376[연등1길 42-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병호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8월 13일 - 여수호좌수영수성창설사적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02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여수호좌수영수성창설사적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비 |
건립시기/일시 | 1779년 |
관련인물 | 김영수 |
재질 | 사암 |
높이 | 167.5㎝ |
너비 | 63.5㎝ |
소재지 주소 | 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 376[연등1길 42-5] |
소유자 | 여수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건립경위]
1779년(정조 3) 지방의 군사들과 의승(義僧)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호남좌수사로 부임한 김영수(金永綬)가 좌수영성을 대대적으로 개축, 보강하고 군사를 정비하였다. 또한 군기, 잡물 등을 마련하고 월과미(月課米) 및 정조(正租) 등을 마련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형태]
비신은 방형의 머릿돌을 갖추고 있다. 높이는 167.5㎝이고, 너비는 63.5㎝이다.
[금석문]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병서에는 공수법이 있으니 이른바 지킨다는 것은 성을 지키는 것이니라, 오직 절도사 김공이 성을 쌓음에 있어 그 단단히 쌓는 법이 있으니 이것이 미리 환난에 대비하는 방법이 아니던가. 공의 휘는 등이요 안동인 이니라. 오직 우리 영조조 계사년 여름에 김해부사로 이임하여 수개월 만에 변방의 임무를 마치니 때는 비록 태평하나 마음은 적을 대한 것 같으니라.
이에 이르기를 이 영이 국난을 당하면 요충지임에도 성은 겨우 완성되었으나 성을 지키는 병사가 하나도 없이 배를 타고 출전하는 날에 성에 들어 튼튼히 지킬 자 누구던고. 수륙을 동시에 방어하는 것은 성을 지킴과 같지 못하니라. 이에 조정에 청하여 명을 받아 이 해 가을 초에 개석을 두루 덮으니 돌은 모두 값이 비싼지라.
칠초루를 짓고 쇠로 양문을 튼튼히 하니 폭넓은 방비로 암석 값은 금 같으니라. 흙으로 물을 모아 못을 만드니 설매지환(說梅之患)을 가히 면하게 되느니라. 군기 범백을 마련 중에 조총 팔백을 나라에서 서울 부대로부터 보내고 각각 색색의 기치는 스스로 마련하였으며 아홉 전함에 비치하는 바는 새로 하고 옛것은 염색을 하여 새로 보수하고 의승 3백으로서 오열을 정돈하니 일군문의 모양으로 과립하고 중군 이하 제임관이 논에서 이삭을 주워 모았고 급료는 곡물과 콩이니라.
판출자는 곧 공이 스스로 마련하였느니라. 월과미 일천석 받을 자는 이를 곧 군대 본부에 보고하여 얻어왔고 정조 3백석은 이는 곧 순영에서 원조로서 받아썼다. 백삼십일 냥은 곧 절도사 이여옥이 별도로 준비하고 이자를 놓아서 준비하여 두었다. 성을 지키던 중군의 더 거두는 분한이 달라진 것은 지방 사람 박문옥이 관에 토지를 바쳤으므로 분한을 고침이라.
돈 일천 냥은 공이 또 별도로 준비하니 이것이 길이 이자가 늘어서 춘추에 활 쏘는 자들에게 상을 주었느니라. 그로서 부모를 공양할 길이 또한 넉넉하다 하였다. 종을 구축하기 위하여 군졸과 대중이 자신을 버리고 열심히 일하니 한 달이 못 되어 준공을 하였다. 이는 그 사적의 대략을 말함 이니라.
공이 돌아가시매 지방 사람들이 서로 의논하여 편안히 하여 죽을 줄을 알면서도 의를 버리지 않고 또 이와 같이 산의 돌은 가히 헤어져도 공의 은덕은 가히 잊지 못하니라. 우리는 마땅히 충력은 다할 것은 장려하고 나라에 보국하고 변방을 막고 하는 것이 곧 김공의 마음을 저버리지 못함이니라. 오호 슬프다. 어찌 가히 힘쓰지 아니 할까. 따라서 쇠를 붙이고 돌을 깎아서 쓰니 천추에도 썩지 않음을 꾀함이니 훌륭하고 훌륭한 일이니라. 건륭 44년(1779) 기해(己亥) 10월 일 토병들이 의를 세우고 스님들이 스스로 역사를 돕다. 도감가선 조대려(趙大呂) 동수가선 박동기(朴東起) 존위 박경행(朴景幸) 한주(韓洲)"
[현황]
여수호좌수영수성창설사적비는 연등동의 산중턱에 형성된 마을의 오른쪽 골목 안에 있는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비의 네 귀퉁이와 밑동 부분에 풍화로 인한 마모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근래에 마모가 심한 부분에 시멘트를 덧발라 보전(補塡)함으로써 비의 원형을 크게 훼손시켰을 뿐 아니라 비문의 상당 부분도 덮여져 내용을 판독할 수 없게 되었다. 1998년 8월 1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0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여수호좌수영수성창설사적비에 보이는 좌수사 김영수의 활동 내용은 대체로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에 언급되어 있어 비문의 내용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좌수영의 여러 시설들의 개축 상황, 운영 경비의 마련 방안 및 수량, 그리고 의승군의 존재와 활동 내용 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되고 있어 좌수영을 비롯한 여수 지방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