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13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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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Inggubu |
이칭/별칭 | 인구부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종길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연등동에서 전해지는 옛 지명.
[명칭유래]
잉구부는 연등동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의 옛 이름이다. 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오림동부터 이어진 도로는 반달 모양으로 크게 휘어져 있다. 왼쪽으로 구부러져 있다 하여 왼구부라고 하였는데, 여수 지방에서는 ‘왼’이란 뜻은 ‘인’으로 발음하여 왼구부를 ‘잉(인)구부’로 하였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인’을 음이 비슷한 ‘연’으로, ‘구부’는 뜻 옮김을 하여 고개란 뜻의 ‘등(嶝)’으로 표기하여, ‘연등동’으로 적은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잉구부 지역은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의 관문으로 여수 통제이공 수군대첩비를 비롯한 수사들의 공적을 기록한 비석거리와 마을 입구에 서서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하던 돌벅수가 서 있었다. 효자와 열녀비들도 잉구부 길가에 많이 늘어서 있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도 잉구부 도로는 여수의 관문으로 진입로의 기능을 다하다가, 덕충동으로 이어진 윗길과 시민회관으로 이어지는 아랫길이 완성되면서 진입로의 기능을 이들 도로에게 넘겨주었다. 지금은 한적한 마을 도로의 구실을 하고 있다.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과 14연대 군인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를 잉구부 전투라고 한다.
여순사건 당시인 1948년 10월 24일 진압군과 봉기군의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대표적인 격전지로서 당시 진압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송호성 준장이 봉기군에게 저격당해 차에서 떨어지며 고막이 터지는 등, 진압군 대열이 무너지며 후퇴하였으며, 송호성 사령관의 장갑차 대열은 시내 중심부인 충무동미곡창고(전 시민극장 자리) 앞까지 깊숙이 진격해 왔다가, 잉구부의 협곡 능선에 매복해 있던 지창수의 봉기군과 유목윤 등의 지역인민위원회에게 기습을 당하는 등 봉기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아 여수탈환작전에 실패를 거듭하였던 곳이다.
[위치비정/행정구역상의 구분]
새 주소인 여수시 연등동의 잉구부길 일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