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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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曲阜孔氏 |
영어의미역 | Gokbu G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상암동 진례마을 |
집필자 | 김준옥 |
세거지 | 전라남도 여수시 삼일동 진례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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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시기/연도 | 조선 초기 |
성씨시조 | 공소(孔紹) |
입향시조 | 공은(孔㒚) |
[정의]
공소를 시조로 하고 공은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연원]
공씨 본관은 곡부(曲阜) 단본이다. 1351년(충정왕 3) 공자의 53세손 공소(孔紹)가 고려에 귀화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가 되고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져 관향(貫鄕)을 창원(昌原)으로 함으로써 우리나라 공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한국의 창원을 본관으로 같이 할 수 없다 하여, 1794년(정조 18) 공자의 고향인 곡부를 사적(賜籍) 받음으로써 곡부공씨가 되었다. 공소의 후손들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판윤공파(判尹公派)·봉명파(鳳鳴派)·목사공파(牧使公派)·장성파(長城派)·사성공파(司成公派)·판서공파(判書公派) 등으로 분파되었다.
[입향경위]
공씨의 중시조 공소의 손자인 공은(孔㒚)이 이성계의 조선 건국이 불의라 하여 두문동에 은거하였다가 조선 초에 여수시 삼일동 낙포에 유배되어 이곳에서 타계했다. 공은이 타계한 후 그의 묘소를 관리하는 후손들이 여수시 삼일동 낙포에 정착하였다.
[현황]
공은의 후손들은 1933년 그의 묘소를 찾아 여수시 상암동 진례산 문바구 밑에 복원하고 1958년 여일재(麗日齋)를 창건했다. 진례마을로 이설된 여일재서원(麗日齋書院)[일명 고산서원]에서 매년 한식날에 전국의 후손들이 제향을 올리고 있다. 이후 여수 지역 후손들은 많은 수는 아니지만 대를 이어 진례마을에 세거하여 왔다.
[관련유적]
여수시 삼일동 상암마을에 공은을 배향한 여일재서원이 있다. 1936년 낙포마을에 건립했으나 여수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사우가 남해화학 부지로 편입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