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0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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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孔㒚 |
영어의미역 | Gong Eun |
이칭/별칭 | 백량(伯良),고산(孤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으로 유배된 문신.
[가계]
본관은 곡부(曲阜). 자는 백량(伯良), 호는 고산(孤山). 공은은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한 노국공주를 따라 수행원으로 와서 귀화하여 곡부 공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공자의 52대손 창원백(昌原伯) 공소(孔紹)의 손자이다.
[활동사항]
공은은 1380년(우왕 6)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가 고려 멸망 무렵에는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으나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으로 조선을 건국한 것을 불의라 하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해 버렸다. 태조와 태종은 애써 공은을 불러 기용하려 했으나 공은은 바른 학문으로 유학을 강조하는 상소를 올렸다. 상소문이 빌미가 되어 경상남도 의금도(依金島)에 유폐되었다가, 전라남도 여수 진례산 아래 낙포로 이배(移配)되었다. 공은은 스스로를 고산(孤山)이라 칭하고 생활하다가, 여수 지역 유배지에서 생을 마쳤다.
[학문과 사상]
공은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적소일일(謫所一日)」 한편의 시로써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망국의 외로운 신하 이 한 몸 괴롭지만/ 바닷가 땅 끝까지 왔음을 어찌 근심하랴/ 풍파 헤쳐 노를 저어 당개(唐介)를 따르고/ 짙은 안개 빗겨가 구공(寇公)을 생각하네/ 산골 새는 그물을 피하여 들 밖을 자유로이 날고/ 연못의 고기떼는 낚시가 두려워 깊은 데로 헤엄쳐 간다/ 인생이 예부터 죽지 않은 이 있던가/ 죽기를 각오한 충성심이 붉게 빛나네(亡國孤臣痛一躬 豈憂此路海邊窮 風波橈楫懷唐介 獐霧橫頻感寇公 谷鳥避羅飛野外 池魚畏釣就溟中 人生自古誰無死 留取丹心照日紅)”
[묘소]
공은의 묘소는 전라남도 여수시 월내동 문중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매년 한식이면 공은에게 제향을 올리는 여일제(麗日祭)가 행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