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4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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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大仁 |
영어음역 | Gim Daei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조선 중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가계]
김대인의 가계와 생몰 연대는 알려진 바가 없고, 다만 순천 별량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사실이 구전으로 전해온다.
[활동사항]
김대인은 어려서 지리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기예가 남달랐던 탓에 산에서 생활하면서 검술을 익혔다. 환속해서 여수 지역을 찾은 김대인은 지금의 석창 지역인 석보촌에서 살았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왜적을 격멸하여 위풍을 떨치고 있을 때, 김대인은 충무공의 막하에서 큰 전과를 올리고 부장(副將)으로 승진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전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이후에는 의병을 모집하여 예성산에 웅거하면서 부근 일대를 수호하고 왜적을 무찔러 전공을 세웠다.
이에 명나라 장수 이여매(李如梅)가 김대인의 전공을 선조에게 진언하여 1600년(선조 33) 당상관에 올라 검미포, 법성포, 다경포, 목포, 어란포, 군산포, 남도포, 금갑도 등 8개 수군만호진을 담당하는 임치진첨절제사(臨淄鎭僉節制使)로 임명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김대인은 탐재에 눈독만을 들인 당시 전라좌수사 이유진의 비행을 가지고 다투다가 의금부에 투옥되어 스스로 분함을 참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