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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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體育 |
영어의미역 | Sports |
분야 | 문화·교육/체육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사상순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신체 활동을 통하여 근육을 단련하고 완성된 인격을 만들려는 교육적 작용.
[개설]
1912년 여수보통학교가 진남관에 있을 때에 육상과 정구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19년에 서울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 귀향하여 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연습을 한 것이 여수 축구의 시초이다. 1926년 여수수산학교 교사 조종응이 학교에 야구부를 창설하게 되었고 다른 체육 경기도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정경수 당시 여수읍장을 회장으로 여수체육회가 처음 발족하여 축구·야구·정구·권투를 관장하면서, 총무 최봉희의 자택인 용문여관을 사무실로 사용했다.
[종목별 현황]
1. 육상
학교운동회 등을 통해 유지되던 육상은 1928년경 경성사범학교 출신인 노승현이 여수공립보통학교로 부임해 오면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1928년 11월에는 최초로 여수공립보통학교에서 주최한 여수육상경기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의 초대 임원으로는 김성환 회장과 유병하 전무이사가 활동하였다. 2007년 현재 도원초등학교, 성산초등학교, 진남여자중학교, 여선중학교, 여천고등학교, 부영여자고등학교 등에서 여수 육상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 축구
1919년 서울 유학생들이 방학 중 귀향하여 청소년들에게 근대 체육에 관한 각종 정보와 경기 방식을 소개하고 이들과 어울려 경기를 했다. 축구 경기는 다른 경기와 달리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기 때문에 진남관의 여수보통학교 운동장이나 여수수산학교 운동장만으로는 경기 인구를 소화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20년대에 시가지 장기 계획에 의해 지금의 교동과 중앙동에 해당하는 일부 바다를 매립하자 뜻밖에 넓은 용지가 생겨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조석으로 축구 연습을 하게 됨으로써 축구 붐이 일었다.
여수 축구를 주도한 사람은 김수평·김주식·박근재·김정평·장재후·김주봉·이용기·강재주·조종희·여도현 등이었다. 축구가 대중 경기로 인기를 얻자 강석주가 1925년 7월 상점 개업 10주년 기념으로 순천·광양·여수·구례 등 4개 팀이 참가하는 남조선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여수 출신인 신연호·김판근·서대건·노인우 등이 국가 대표에 선발되어 1983년 6월 멕시코에서 개최된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오르는 데에 주역이 되었다. 2007년 현재 여수미평초등학교와 여수구봉중학교에서 축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3. 야구
1926년 여수수산학교 교사 조종응이 학교에 야구부를 조직하고 야구 규칙과 경기 방식을 지도하며 학년별 또는 학과별로 시합을 한 것이 여수 야구의 시초이다. 이후 서울 중동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조종희·김준평 등이 서울에서 익힌 야구를 방학 중 귀향하여 부락 청소년들과 매립지 등 공지에서 어울려 시합을 하고 시범을 보였다. 이후로 야구 경기에 흥미를 느낀 일반인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1951년 10월에 여수야구협회가 창립되어 박창희가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2007년도 현재 육성 학교로는 여수서초등학교와 여수중학교 등이 있다.
4. 배구
1946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여수여자중학교로 부임한 이영택과 전주사범학교 출신인 여수중학교 교사 한원택이 학생들에게 배구를 지도하면서 배구팀을 조직한 것이 시발이다. 배구협회 회장은 1955년 이후 여수경찰서장이던 이종환 총경이 명목상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가 1961년 10월 2대 회장에 여수남선제빙 사장 김인채로 변경되었다. 2007년 현재 육성 학교로 신기초등학교 여자배구팀이 있다.
5. 농구
우리나라에 농구가 들어온 지 30년 뒤인 1945년경 미군들이 여수수산학교에 주둔하면서 미군이 즐겨하는 농구 경기를 관전하던 학생들에게 보급되었다. 1951년에 이르러 이영택, 송지석, 우민홍 등의 참여로 농구협회를 창설했다. 정양신이 초대 협회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2007년 현재 육성 학교로는 쌍봉초등학교, 여천중학교, 여수전자화학고등학교 등이 있다.
6. 탁구
탁구가 첫 선을 보인 것은 1936년경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강기우가 널판을 깔아 만든 탁구대에서 부락 청년들과 어울려 경기하면서 부터이다. 그 후로 1943년 일본에 유학 중이던 이명길이 귀국하여 여수에 정착하면서부터 보급되었다. 협회 초대 회장은 문균이었다. 2007년 현재 육성학교로 중흥초등학교, 백초초등학교, 삼일중학교, 진성여자중학교, 여양고등학교 등이 있다.
7. 정구
1912년 여수보통학교에서 원 선생을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의 경기가 처음 소개되었다. 1917년에는 여수와 광양의 경기가 광양에서 개최되었는데, 분별없는 승부욕 때문에 경기 진행을 못하고 결국은 우승기를 서로 갖겠다고 빼앗다가 우승기가 양분되어 반쪽 우승기를 갖고 돌아오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1954년에 정구협회가 조직되었으며 초대 회장으로 김우길이 선임되었다.
8. 씨름
여수 씨름하면 여수시 종화동에 살던 최가오리를 들 수 있다. 1920년을 전후하여 여수뿐만 아니라 순천·광양·고흥·보성 등지의 씨름판을 석권하고 다닌 사람이었다. 1961년 여수씨름협회가 처음 조직되었는데 초대 협회장에 정주영, 총무에는 정상환이 추대되어 협회를 강화하였다.
9. 궁도
여수에 사장(射場)이 설치된 것은 3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1년(선조 24) 전라좌수영 수군절도사로 부임한 이순신이 지금의 군자동 배수지 밑에 군자정이란 사장을 창건하여 장병들과 향토 무사들의 무예 연습장으로 쓰게 한 것이 여수 궁도의 시초이다. 1961년 9월 11일 군자정·충무정·해운정 3개 사장의 대표들이 모여 여수궁도협회를 정식 출범시키면서 여수중앙주조장을 경영하던 최기영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체육단체 현황]
여수 지역의 체육단체는 여수시 체육회 산하에 육상·축구·배구·정구·테니스·탁구·유도·복싱·궁도·씨름·태권도·배드민턴·사이클·볼링·수영·농구·검도·야구·사격·양궁·보디빌딩·산악 등 22개 가맹경기단체가 구성되어 있고, 여수시생활체육회 산하에 배구·축구·테니스·탁구·궁도·배드민턴·게이트볼·생활체조·볼링·족구·단학·등산·낚시·자전거·농구·검도·육상·씨름·패러글라이딩·국무도·보디빌딩·트라이애슬론·태권도·복싱·윈드서핑·수영·인라인스케이팅·정구·택견·댄스스포츠·스쿼시·특공무술·요가·합기도·음악줄넘기·당구 등 36개 종목 연합회가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