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513
한자 榮州朴承任宗中所臟典籍-遺物
영어공식명칭 Documents and Relics Collection of the Park Seung-im Clan, Yeo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80[청구리 346]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1월 7일연표보기 -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10월 6일 -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 목판본 고서 38종 66책 추가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 중 전적류 소수박물관 기탁 보관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0년 -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 중 목판류 한국국학진흥원 기탁 보관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소장처 소수박물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80[청구리 346]지도보기
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서부리 220]
발견|발굴처 반남박씨 판관공파 소고종중 - 경상북도 영주시 고현동 지도보기
성격 고서|고문서|유물
저자 박승임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청구리 소수박물관에 소장된 반남박씨 박승임 종중 소장 전적과 유물.

[개설]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은 조선 전기의 문신 박승임(朴承任)[1517~1586] 부자와 관련된 필사본·유물 등 410점, 목판본 고서 38종 66책이다.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은 2005년 11월 7일 고문서·필사본·유물 등 일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0호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 10월 6일에는 목판본 고서 38종 66책이 추가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원래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영주시 고현동에 세거하는 반남박씨 판관공파 소고종중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현재 고문서·필사본·고서 등의 전적류는 소수박물관에 위탁 보관 중이며, 책판 일체와 유물 일부는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 보관 중이다.

[저자]

박승임의 자는 중포(重圃), 호는 소고(嘯臯), 본관은 반남(潘南)으로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박승임은 1540년(중종 3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여러 청환직을 지낸 뒤 사가 독서를 하였다. 이조좌랑 등을 거쳐 정언을 지냈는데, 소윤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갔다. 1547년(명종 2) 예조정랑에 임명되고, 그 뒤 현풍현감이 되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하는데 힘썼다. 1557년(명종 12) 윤원형(尹元衡)의 세도가 더욱 심해지자 벼슬을 사직하고 학문에 힘썼다. 이후 박승임은 다시 풍기군수 등을 거쳐 진주목사에 이르렀다. 1569년(선조 2) 동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황해도관찰사·도승지·춘천부사 등을 지냈다. 1583년(선조 16) 대사간이 되었으나 선조의 미움을 사 창원부사로 좌천되었다. 얼마 뒤 중앙에 소환되었다가 병사하였다. 박승임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영주 구산정사(龜山精舍)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성리유선(性理類選)』, 『공문심법유취(孔門心法類聚)』, 『강목심법(綱目心法)』, 『소고집(嘯臯集)』이 있다.

박녹(朴漉)[1542~1632]의 자는 자징(子澄), 호는 취수헌(醉睡軒), 본관은 반남이다. 박승임의 아들이다. 박녹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의병장이 되었다. 박녹은 경상도의 다른 의병장들과 협력하여 교묘한 전술로 왜군을 괴롭힘으로써 고을을 방어하였다. 1594년 나라에서 공을 인정하여 태릉참봉에 임명하였으나 곧 그만두었다. 정유재란 중인 1598년(선조 31)에도 사근도찰방에 임명되었지만, 병을 핑계로 사임하였다. 1603년 의금부도사를 비롯하여 예빈시별제 등을 역임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임하였다. 1630년(인조 8) 노인직(老人職)으로 통정대부를 거쳐 이듬해 가선대부에 가자되었다.

박종무(朴樅茂)[1582~1664]의 자는 계직(季直), 호는 삼락당(三樂堂)이며, 영주 한정(寒亭)에 거주하였다. 박종무는 박승임의 손자이며, 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이준(李埈)의 문인이다. 28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경학으로 여러 번 천거를 받았다. 이괄의 반란 때 임금을 공주까지 백형(伯兄)과 함께 호종하였으며, 병자호란 이후 출사를 단념하고 연화산에 은거하며 학문에 열중하였다. 박종무는 삼낙사(三樂祠)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육삼연고(六三聯稿)』가 있다.

[편찬/간행 경위]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 중 교령류 17점은 1576(선조 9)~1615년(광해군 7)까지 박승임·박녹·박종무 3대가 수급한 교지와 교첩이며, 분재기 3점은 17세기 초·중반 박녹과 박종무가 자손들에게 재산을 분배할 때 작성한 것이다. 그 외에도 1609년(광해군 1)의 박종무 시권 1점, 1609(광해군 1)~1871(고종 8)년까지의 박합(朴烚)·박시림(朴時霖)·박기수(朴箕壽) 등의 호구단자 20점, 1611년 박녹의 상소 1점, 16세기에 편집한 선현 유묵 2점, 1624년(인조 2) 계회도 1점, 16세기 말의 기려도(騎驪圖) 6점, 1634년 박형비문(朴珩碑文) 1점, 16세기 말 백월서운탑비탁본(白月栖雲塔碑拓本) 1점, 소고선생각대(嘯皐先生角帶) 1점이 있다.

책판인 『금남문집(錦南文集)』 판목 20장, 『성리유선(性理類選)』 판목 201장, 『소고집』 판목 135장은 20세기 초반 박승임을 현양하는 목적에서 박승임의 저서와 문집을 간행한 것이다. 전적 38종은 14~17세기 초반에 제작된 것인데, 경서가 가장 많고, 시문과 성리서 등의 순으로 소장되어 있다.

[형태/서지]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은 모두 38종 66책 410점으로 전적은 38종 66책이며, 고문서 5종 42점은 낱장으로 되어 있다. 유물로는 기려도 6점, 비문 1점, 탁본 1점, 소고선생각대 1점, 선현 유묵 2점, 계회도 1점이 있다.

책판은 총 3종 356장인데, 판목의 크기를 일별하면, 마구리를 제외한 판의 크기는 세로 20㎝, 가로 48㎝ 내외로 비교적 고른 편이나, 일부 판은 가로가 50㎝에 달해 약간의 편차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본문의 내용을 새긴 반곽의 크기는 대부분 판에서 세로 20㎝, 가로 16㎝로 비교적 균일하게 새겨졌다. 반면, 판목의 두께는 얇은 판은 1.0㎝에서 두꺼운 판은 2.8㎝에 달해 2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평균적인 판목의 두께는 2.0㎝ 내외이다.

[구성/내용]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 중 고문서는 42점으로 교지·교첩 17점, 분재기 3점, 호구단자 20점, 시권 1점, 상소 1점 등이다. 교령류는 1576년부터 1585년까지의 박승임 교지 10점, 1583년과 1635년의 박녹 교지 2점, 1612~1615년의 박종무 교첩 5점으로 확인된다. 분재기는 박승임의 아들 박녹이 분재한 것과 손자 박종무가 분재한 것이 있으며, 17세기 초반에 작성된 다른 1점의 분재기는 앞부분이 탈락하여 재주(財主)를 확인할 수 없다. 또한, 시권 1점은 1609년 박종무가 진사시를 보면서 제출하였다. 박종무는 진사시 3등 54위로 입격하였다. 호구단자는 20점으로 17세기 초반의 박합,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의 박시림, 19세기 박기수 등이 발급한 것이다. 상소는 박녹이 1611년(광해군 3)에 올린 사직소이다.

[의의와 평가]

영주박승임종중소장전적및유물 중 고문서는 유일본이자 일차적인 자료로 관에서 편찬한 사료의 미비점을 보완해 자료적 가치가 높다. 또한 그 내용이 현실성·구체성·정확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해당 시대의 사회경제적 이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특히 교지는 임진왜란 이전 자료가 많아 희소성이 있다는 점에서, 분재기는 17세기의 것으로 박승임 가문의 재산 규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호구단자는 대부분 18~19세기의 것으로 시대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작성되어 가문의 내력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전적류 중 『증광주석음변당류선생집(增廣註釋音辯唐柳先生集)』과 『신편고금사문유취(新編古今事文類聚)』 등은 14세기 중국에서 간행된 중요본이다. ‘융격임신추영주군개간(隆慶壬申秋榮州郡改刊)’이라는 간기를 통해 1572년(선조 5)에 간행된 것이 확인되는 『성학십도(聖學十圖)』와 『점필재집(佔畢齋集)』 등의 목판본도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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