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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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尼山烽燧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산7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최현화 |
관련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영니산 봉수터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시 지표 조사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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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사항 시기/일시 | 2009년 - 영니산 봉수터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실시 |
소재지 | 영니산 봉수터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 산7 일원 |
성격 | 봉수|봉수터 |
소유자 | 사유지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유적.
[변천]
영니산 봉수는 조선 시대 봉수 체계인 직봉(直烽) 노선 즉 의흥현 승목산 → 의성현 영니산 → 의성현 마산 → 안동 일직현 감곡산으로 이어지는 주요 봉수 중 하나이다.
영니산 봉수는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 조선 전기 각종 지리서에서 의성현에 있는 주요 봉수로 기록되어 있다. 1425년에 간행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의성현조에는 “영니산 봉화는 현의 남쪽 20리 정도에 있으며 남쪽으로 25리 떨어져 있는 의흥현의 승목산 봉화를 받아 현 내의 북쪽 30리 거리에 있는 마산 봉화에 전한다[盈尼山烽火 在縣南二十里許 南望義興縣地縄木山烽火 相去二十五里 北望縣地馬山烽火 相去三十里].”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도 같은 노선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북쪽에 새로 고성산 연대봉화가 생기면서 여기에서 봉수를 받아 전달하는 노선으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1469년]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영니산 봉화와 마산 봉화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증설된 결과로 보인다. 이처럼 영니산 봉수는 조선 초 이래 직봉 노선으로 활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8세기 이전에 폐지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1760년에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영니산 봉수가 폐지되고 그 대신 승원산과 대야곡의 봉수가 추가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위치]
영니산 봉수터 유적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리금성산 금성 산성 동쪽 끝인 4봉 정상[445m]에 위치한다. 이곳은 금성산 정상 분화구에서 약 1.8㎞ 떨어진 지점이다. 서고동저형으로 서쪽을 제외한 3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서쪽과 동쪽은 비봉산으로 가로막혀 있으나 남북 방향은 뚫려 있어 주변을 조망할 수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영니산 봉수터 유적에 대한 조사는 2004년 대구 대학교 중앙 박물관에서 『의성군 문화 유적 분포 지도』 작성을 위한 지표 조사가 있었으며, 2009년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부분적인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현황]
영니산 봉수터 유적은 봉수대와 직접 관련된 연대나 방화장 등은 남아 있지 않고 현재 남쪽, 동쪽, 북쪽 석축 방호벽만이 남아 있다. 방화벽 중 남쪽이 가장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남쪽 방호벽은 길이가 약 14m, 높이가 약 90㎝로 석축 6단 정도이다. 동쪽 방호벽은 일부 허물어져 길이 15m 정도가 남아 있으며 북쪽은 산성의 성벽 석축을 이용하였는데 높이는 50~60㎝이다. 방호벽을 통해 볼 때 봉수대의 평면 형태는 방형이며 전체 규모는 남북 18m, 동서 15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봉수대 유적은 민묘가 조성되면서 훼손된 상태이며, 주변 곳곳에서 기와편이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