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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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遷歌-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현주 |
편찬|간행 시기/일시 | 2000년 - 「북천가」 『의성의 민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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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가사 |
작가 | 김진형[1801~1865]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에 전해오는 조선 후기 문신 김진형(金鎭衡)의 유배 가사.
[개설]
「북천가」는 김진형[1801~1865]의 유배 가사이다. 가사의 작자는 사대부로서 국가와 군주에 대한 충성심과 연군의 체모(體貌)[체면]를 잃지 않으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과의 교감이나 기생들과의 유희라는 풍류적 태도를 과감히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전해지는 「북천가」는 규방 여자들을 중심으로 그 가사가 전해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유배 가사에 속하지만 규방의 아낙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가 의성 지역까지 전해져 필사본이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의성군에서 볼 수 있는 「북천가」의 가사 역시 일반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작품과 동일한 내용이다.
[구성 및 형식]
「북천가」는 4음보 가사체 형식으로, 4음보 기준 전체 480구의 장편이다. 내용은 크게 나우어 유배지에 도착하기 이전과 이후의 2단계이다.
[내용]
「북천가」는 김진형의 유배 가사 작품으로, 초반부에 유배형을 받게 된 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공명이 늦이나마 행세나 약바르지/ 무단이 내달라서 소인의 측이되야/ 부월을 무릅쓰고 천문에 상소하니/ 예전으로 보게되면 빛나고 장컨마는/ 요란한 이세상에 남다른 노릇이라/ 소환장 읽으면서 만조가 울적한다”에서 볼 수 있듯 상소를 올렸던 것이 화근이 되어 유배를 가게 된다는 것이다.
작자는 유배지로 향하면서 여러 고을을 거치는데, 고을 사람들은 김진형의 죄가 무죄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곤원읍 돌아가니 본수의 오공지는/ 우리와 세의있어 나를보고 반겨하니/ 천리밖에 날반길이 이어른 뿐이로다/ 책방에 맞아들여 음식을 공괴하여/ 위로하고 다정하다 객희를 잊겠고나/ 몽마주고 사령주고 행자주고 의복주니/ 불안하기 그지없다”에서 볼 수 있듯 작자 김진형은 각 읍에서 받는 물품들에 불안해 하지만 주변의 고관들은 김진형의 행위를 ‘무죄’로 간주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진형이 지나가는 지역의 고을 대표들이 저마다 김진형을 대접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배지에서도 김진형은 죄인으로 홀대 받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혼자앉아 소일하니/ 성내의 선비들이 문풍하고 청학하니/ 하나오고 둘이오니 십육인이 되난구나/ 책메고 청학하며 글지어 골여주소”에서 볼 수 있듯, 김진형에게 배움을 청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칠보산으로 놀이를 갈 때에 두 명의 기생을 대동하게 되는데, “하나는 매향인데 방년이 십팔세요/ 하나는 군산월이 십구세 꽃이로다/ 화상을 불러내여/ 음식하고 노름시켜 노래를 들어보니/ 매향의 영웅도는 운무가 흩여지고/ 군산월이 양금술에 만학천봉 푸르렀다/ 귀로승 앞세우고 두기생 옆에끼고/ 천봉만학 깊은곳에 개심산 들어가니/ 단풍은 비단이요 수성은 거문고라” 이 중 군산월은 사랑하는 사람으로 발전하여 김진형의 유배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작품의 중반은 주로 군산월과의 사랑을 이야기 한다.
김진형은 결국 해배(解配)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도중 군산월에게 이별을 고한다. “내본대 영남있어 선비의 졸한몸이/ 천리를 기생싣고 천고에 없는호강/ 끝나게 하였으니 죄명을 이제벗고/ 협기하고 돌아가면 분외에 황송하고/ 모양이 고이하다 부디부디 잘가거라/ 디비볼때 있나니라 군산월이 거동보소/ 깜짝이 놀라면서 원망으로 하는말이/ 버릴심사 계시거든 중간에 못하여서/ 어린사람 홀려다가 사고무친 천리밖에/ 개발물어 던진듯이 이런일도 하나니까/ 나으리 정덕으로 사랑은 배부르나/ 나으리 무정키로 풍전낙화 되었고나”
군산월은 김진형과의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작자에게 있어 군산월은 유배지에서 만났던 기생으로 기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김진형은 고향으로 돌아가 관직을 되찾고 벼슬아치가 되기 위해서는 군산월을 떠나보내야 했던 것이다. 작품은 유배지로 이동하는 장소에 대한 서술과 유배지에서의 생활을 서술하고 있어 유배 가사의 전형적인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내용은 기생과의 사랑이 주가 되어 다른 유배 가사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특징]
홍문관 교리로 있던 작자 김진형은 1849년(헌종 15) 이조 판서 홍기순(洪箕淳)의 잘못을 탄핵하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를 당해야 했다. 그리하여 머나먼 함경도 명천(明川) 땅에서 고통스런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훗날 김진형은 방면되어 고향인 안동의 본가에 돌아왔으며, 그동안 겪은 고난과 비애의 삶을 글로 남기고 싶어 「북천가」를 창작하였다. 하지만 가사의 내용은 유배 생활로 인한 고난과 비애를 그리기보다 각 지역에서 대접받은 것들과 기생과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북천가」는 비교적 유명하다고 할 수 있지만, 풍류적 성격이 매우 강해 유배 가사 중에서는 다소 특색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형에 처한 것이 첫 번째 이유요, 유배지로 향하는 곳마다 ‘죄인’ 김진형을 극진히 대접했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북천가」는 풍류적 성격이 매우 강했기에 부녀자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필사가 유행하면서 의성 지역까지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