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병사의 교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71
한자 -張兵使-驕慢-
이칭/별칭 장 병사의 전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집필자 박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68년 10월 - 「장 병사의 교만」 『내 고장의 자랑』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71년 - 「장 병사의 교만」 『영남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구천면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유산리 193지도보기
관련 지명 용사리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용사리 400지도보기
관련 지명 조성지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조성리 185지도보기
채록지 구천 초등학교 - 경상북도 의성군 유산리 507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장 병사|어머니|염라대왕
모티프 유형 능력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용사리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68년 10월에 구천 초등학교의 김명섭이 제공해 의성 교육청[의성 교육 지원청]이 발간한 『내 고장의 자랑』에 「장 병사의 교만」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이어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재수록되었다.

[내용]

장한상(張漢相) 병마 절도사는 의성군 구천면 용사리 상재 마을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그의 어머니가 상주시 외서면 내산동 청석 마을에 살 때 잉태하였으나 청석 마을에서 해산하면 큰 인물이 못 된다는 예언을 듣고 당시 상주군 내동면 사포리[현 의성군 구천면 용사리]로 이사하여 낳았다고 한다.

장 병사가 태어난 시기는 확실치 않지만 대개 조선 시대 효종 때라고 추측하고 있다. 장공은 출생 후 3일 만에 앉았고, 3달 만에 걸었다고 전하며, 장정 때는 세상이 놀랄 만큼 힘이 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근 지역의 씨름 대회에서는 우승을 도맡아 차지했는데 이로 인한 자존심도 대단히 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씨름 대회에서 흰 옷을 길게 입은 사람에게 보기 좋게 참패하였다. 집에 와서 한숨을 짓고 우울한 표정을 하고 있기에 어머니가 왜 그러는지를 묻자 대답하기를 “제가 아직 씨름 대회에서 져 본 적이 없었는데….”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그래, 오늘은 졌구나. 사람이 교만하면 안 되는 법이다. 오늘 흰 옷을 입은 사람은 바로 이 어미였느니라.” 하고 훈계하였다. 과연 모친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음이다.

장 병사가 한창 힘을 쓸 청년 시기에 장안에 여산 대호(大虎)가 나타났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대낮에 장안을 휩쓸어, 장안의 백성들은 온통 겁에 질렸지만 누구도 이를 막을 장사가 없었고, 이에 조정에서는 장 병사를 불렀다. 장 병사가 장안에 도착하자 곧 호랑이 한 마리가 그의 앞에 엎드렸으며, 그 호랑이를 타고 장안을 한 바퀴 돌자 대 여섯 마리의 호랑이가 그 뒤를 따랐다. 결국 호랑이는 장안에서 자취를 감췄으며, 장 병사는 가끔 호랑이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 장 병사의 사당에는 그가 호랑이를 타고 있는 그림이 남아 있다.

하루는 장 병사의 꿈에 저승의 염라대왕이 나타나 말하기를, “경상북도 청송(靑松) 모처에 최 모 씨가 살고 있는데 힘이 장사라 염라국에 올 때가 되었으나 우리 염라국에서 그를 잡아 올 처사가 없으니 장 병사 당신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며 최 모 씨를 잡아 주기를 간청하기에 할 수 없이 약속하고 나니 꿈이었다. 장 병사는 아내를 불러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고 “염라국에 다녀 올 때까지 그대로 두라.” 하고는 죽었다고 한다.

그는 염라대왕의 특청을 받고 청송 최 모 씨 집에 가 보니 담장이 굉장히 높고 대문은 굳게 닫혀 있어 장 병사로서도 도저히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한 곳을 지날 때 예쁜 처자가 손짓을 하기에 가까이 가니 수채 구멍이 있었다. 처자의 도움으로 안에 들어간 장 병사는 최 모 씨를 붙잡을 수 있었고, 염라대왕 앞에 데려다 주고는 죽은 지 1주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 그 후 청송의 최 모 씨 집에 가 보니 담은 탱자나무로 둘러있고, 예쁜 아가씨가 손짓하던 곳에만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집 울타리에는 귀신을 부른다 하여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한다.

장 병사는 만년에 지방 사업으로 지금의 조성 저수지 조금 아래의 못을 막았는데, 작업 인부는 모두 전라도 사람들을 시켰다. 그런데 일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인부들이 못이 보이는 고개에 와서 울었다고 하여 그 고개를 지금도 ‘울고개’라고 부른다. 또한 이 못 바로 아래에 있는 선창 마을 뒷산에 직경 70㎝ 크기의 신비한 굴이 있다고 하는데, 전라도 인부들이 고생에 못 이겨 그 굴속으로 들어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우스운 전설도 있다. 사람들은 이 굴이 2㎞ 떨어진 비안면 옥포리까지 통하고 있다고 하여 인부들이 도망간 통로로 여기기도 한다.

[모티프 분석]

「장 병사의 교만」의 주요 모티프는 ‘뛰어난 능력’이다. 장 병사는 호랑이를 제압하기도 하고 저승으로 가 염라대왕을 도와주기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보통 사람과는 구별되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가 의성군에 살았다는 전설을 통해 전승 집단의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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