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67
한자 景德王陵
이칭/별칭 경덕왕릉의 유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집필자 박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58년 8월 - 「경덕왕릉」 『의성 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71년 - 「경덕왕릉」 『영남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경덕왕릉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산8지도보기
성격 설화|전설
주요 등장 인물 농부|의성 군수|경덕왕
모티프 유형 현몽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있는 경덕왕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경덕왕릉」은 의성 지역의 고대 국가였던 조문국[召文國] 경덕왕(景德王)의 능과 관련된 전설이다. 의성군 금성면 금성산 아래에는 탑리역(塔里驛)이라는 조그마한 역이 있다. 탑리역을 중심으로 금성면 일대는 조문국의 도읍지였는데, 구릉 같은 고분(古墳)이 산재하고, 조각된 주춧돌을 비롯하여 옛날 토기와 철구(鐵具)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편, 금성면 탑리리에서 조금 떨어진 대리리에는 경덕왕릉이 있는데,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문집(文集)에 왕릉의 발견과 관련된 신기한 전설이 실려 있으며, 지역 주민들 사이에도 구전으로 전승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58년에 의성 교육청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와 1971년에 유증선(柳增善)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경덕왕릉 유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관광 지식 정보 시스템 인터넷 사이트에는 「경덕왕릉」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옛날 한 농부가 외밭을 마련하기 위하여 작은 언덕을 갈고 있는데 큼직한 구멍이 나타났다. 농부가 이상하다 생각하여 구멍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돌로 쌓은 석실(石室) 무덤이었다. 무덤 둘레는 금칠이 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금소상(金塑像)이 있었는데, 머리에 쓴 금관이 찬란히 빛났다.

농부는 그 금관이 탐이 나서 벗기려 했는데, 금관에 손이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날 밤 의성 현령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나는 경덕왕이다. 아무 곳에 가서 살펴보고 무덤을 개수 봉안토록 하여라.”고 하였다. 이튿날 현령은 무덤을 발견하여 잘 수리하였고, 그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경덕왕릉」의 주요 모티프는 ‘탐욕’과 ‘현몽’이다. 조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전설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계가 나타난다. 또한 의성 군수에게 현몽하여 조문국 경덕왕의 무덤이 금성면 대리리에 있다고 하는 것에서 과거 의성 지역에 있었던 조문국이라는 나라가 신라에게 패해 사라져 버린 비극적 운명을 아쉬워하는 전승 집단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 유증선 편저, 『영남의 전설』(형설 출판사, 1971)
  • 관광 지식 정보 시스템(http://tour.go.kr/)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8.03.26 한자 오탈자 수정 敬德王 -> 景德王
이용자 의견
이** 조문국 경덕왕의 한자 표기는 1.景德王, 2.敬德王 으로 표기되었습니다. 현재는 1.景德王으로 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敬德王이란 표기는 景德王으로 표기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사료됩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 답변
  •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소중한 의견을 검토하여 해당 한자를 수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8.03.26
김** ㅇ 내용
그날 밤 의성 군수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 조선시대 의성군은 의성현이므로 의성현령의 꿈으로 정정함이 타당
하다고 생각합니다.
  • 답변
  •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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