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763 |
---|---|
한자 | -洞告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
집필자 | 박은정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율리 마을 동고사 기름 종지의 영험함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
[개설]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율리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동고사를 지내는데 이때 사용된 기름 종지를 자기 집으로 가져가 밝히고 축원 기도를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율리 마을의 동고사 때는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들이 많이 참여하여 기름 종지 쟁탈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동고사와 기름 종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자료 제공자는 ‘김영위(金永渭)’라고 되어 있다. ‘의성문화관광’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다.
[내용]
우리나라 민속 중에 사람의 힘과 능력이 미치지 못할 때 신이나 고목, 큰 바위 등에 신비한 힘을 바라고 정성을 들이는 일들이 있다. 자기의 일신과 가족의 소망이나 행운을 빌기도 하고, 가족 중에 중환자가 있는데 병이 낫지 않을 때, 혹은 가정에 액운이 닥쳤을 때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빌기도 한다. 또 자식이 진학 시험이나 고시 등 큰 시험에 응시할 때 합격을 위해 기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들을 낳지 못할 때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정성과 지성을 다해 신령의 도움을 바라고 의지해 왔다.
정월 초 무렵이 되면 한 해의 신수를 궁금해 하면서 점을 치기도 하고, 크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곤 한다. 이런 것들은 우리 민족이 아주 옛날부터 이어온 풍속이기도 하다. 그러한 풍속 중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동고사(洞告祀)이다. 동고사는 한 동리의 동민들이 동신(洞神)으로 모신 고목이나 높고 큰 바위에다 지내는 제사이다. 정월 대보름날에 서낭당, 산신당, 당산(堂山) 따위에서 지낸다. 동민들은 목욕재계를 하고 지성을 다해 동리 주변을 청결하게 한다. 그러고서는 동민들의 한 해 무병과 풍년, 소원 성취와 가축들의 번식을 축원하는 것이다. 이 동고사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오다가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차차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 동고사를 계속 유지하던 곳이 있다. 의성군 서부 끝자락, 상주군 낙동면과 낙동강을 군계로 한 의성군 단밀면에 율리[생송 3리]라는 마을이 있다. 이 율리 마을도 오랜 옛날부터 동고사를 지내왔는데 지금부터 약 100여 년 전부터 동고사와 관련하여 영험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들을 낳지 못한 한 부인이 율리 마을 동고사 때 불을 밝혔던 기름 종지를 초롱에 넣어서 불이 꺼지지 않게 하여 집에 가져갔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제수를 장만하고 가져온 기름 종지에 불을 밝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지성으로 축원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들을 낳게 된 것이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인근 동리로 전파되어 갔다.
소문은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그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율리 마을 동고사를 손꼽아 기다렸으며, 정월대보름날이 다가오면 먼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다. 간단한 요나 담요를 덮어 쓰고 찾아와서 동고사를 올리는 장소에서 고사가 끝나기를 고대하다가 제관이 고사 상을 철상하고 돌아가면 기름종짓불을 꺼지지 않게 초롱에 넣어서 자기 집으로 가져간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게 가져온 기름종짓불을 밝히고 자기 집에서 정성들여 만든 제수를 갖추어 ‘소망을 이루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축원 기도를 드리면 틀림없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기름 종지의 영험함이 알려지면서 기름 종지를 구하려는 여인들의 수가 많을 때에는 쟁탈전이 벌어진다고 한다. 서로 가져가려고 싸우다 종짓불을 깨뜨리는 경우도 있어서, 나중에는 종지도 버리고 심지를 입에 물고 달아났다고 하니 이 불 종지를 중하게 여기기를 마치 자기가 고대하던 아들과도 같이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다.
전통 시대 여인들이 아들을 생산하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여겼던 것은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자손의 으뜸 도리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씨받이를 해서라도 대를 이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서구의 문명이 들어오고 산업 사회가 되면서 대가족제는 소가족제로 바뀌고 남아 선호 사상도 많이 희박해졌다. 이제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들도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이에 따라 그토록 귀중하게 여기던 율리 마을 동고사 기름 종지에 관한 것도 점점 옛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모티프 분석]
「동고사와 기름 종지」는 ‘신앙 기원’과 ‘기자(祈子)’를 주요 모티프로 하고 있다. 남아 선호 사상이 심했던 시절에 아들을 낳지 못해 애태우는 여성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정성을 들였는데, 동고사 기름 종지의 영험함은 그러한 바람을 이루어준다는 데서 잘 드러나게 된다. 가장 절실하고 큰 소망인 아들 낳기를 들어준다는 것을 통해 그 영험함은 극대화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