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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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川-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안계면 |
집필자 | 박은정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구천 나루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과 안계면 사이의 위천을 건네주던 사공 조익수에 대한 인물 전설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던 조익수가 있었기에 구천면 주민은 마음 편히 위천을 건널 수 있었다. 지금은 구천교가 설치되었고 조익수가 타계한 지도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구천면 주민들은 믿음직했던 조익수를 추억하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구천 나루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와 의성군 구천면 내산리 사이에는 위천이 흐른다. 위천은 하천의 너비가 350m나 되는데,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발생하면 범람하여 마치 바다를 이룬 것처럼 흘렀다. 안계 평야는 일제 강점기 말에 제방이 완공되었으나 구천면 쪽은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위천이 범람하면 구천면 쪽의 넓은 평야가 물에 잠겼고, 주민들은 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971년에 위천을 건너는 잠수교가 준공되었고, 지금은 구천면 쪽에도 제방이 만들어졌으며, 1995년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380m, 폭 8m의 구천교도 설치되었다. 덕분에 인근 주민들은 강물이 넘쳐 고립되는 불편을 벗어났으며, 일선교까지도 통행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잠수교가 개통되기 전, 주민들이 위천을 건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5일장인 안계 시장(安溪市場)이 서는 날이면 이웃에 있는 구천면 주민들은 안계면으로 장을 보러 나갔는데, 의성군청 소유의 통행선 한 척이 그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이 배는 약 50명 정도를 태울 수 있는 목선(木船)으로, 큰물이 흐를 때가 아니면 뱃사공 한 사람이 운행을 전담하였다. 안계장 장날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선창 나루는 북적거렸다. 대부분이 무거운 장짐을 들고 올라타는 사람들이었고, 50명 정원에 70~80명씩 다투어 승선하기도 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그 당시 우리네 시골 풍경은 대부분 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목선을 책임지고 운행한 뱃사공은 조익수(趙益洙)였다. 조익수는 도선술에 능숙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실하고 민첩하였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 정원을 초과하여 승선할 경우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다음 배를 타도록 사정하기도 했지만, 한두 사람뿐이라도 오래 기다리고 있으면 주막에서 쉬다가도 즉시 배를 운행하여 건너 주곤 했다.
조익수는 경상북도 예천 사람으로 원래 일선교가 있는 곳인 용산 나루의 이름난 사공이었는데 구천면의 유력자들이 청해서 구천 나루에 왔다는 얘기가 있다. 비교적 폭이 넓은 위천이 홍수에 범람할 때도 구천면의 많은 주민들이 작은 목선을 의지해 하천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뱃사공에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장 힘들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는 신념으로 묵묵히 일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지만 적어도 사공 조익수에 대해서는 모두가 고맙게 여겼다. 조익수가 면전에 있건 없건 한결같이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구천 나루와 목선이 그리던 풍경은 전설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아직도 구천면의 많은 주민들은 그 시절을 회상하며 뱃사공 조익수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타계한 지는 꽤 되었지만 성실함은 물론 건장한 체격에 수려한 용모까지 갖췄던 조익수에 대한 일화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모티프 분석]
「구천 나루의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사공 조익수의 성실함과 인품’이다. 대단한 지위나 명예를 누리는 직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공 조익수는 구천면 주민들을 위해 성실하게 강을 건너 주는 일을 했다. 이러한 조익수의 됨됨이를 주민들이 알기에 지금까지도 그리워하고 있다. 천한 일을 하지만 높은 인격을 가진 인물에 대한 칭송은 오랜 전통을 가진 것으로 조선 후기 한문 단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