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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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岩山-花煎-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위양 1리 |
집필자 | 박은정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위양 1리 대암산의 화전놀이에 대한 이야기.
[개설]
대암산의 이름이 유래된 내력과 그곳에서 벌어졌던 화전놀이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지녔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대암산의 화전놀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다.
[내용]
대암산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위양 1리의 뒷산이다. 그다지 높지 않은 평평한 바위산이어서 대암산이라 부르는데, 순수 우리말로 한바위재라고도 한다. 안계면 소재지에서 도리원 쪽으로 국도를 달려 나오다 약 2㎞ 지점에서 왼쪽으로 바라보면 대암산이 보인다. 당평 마을과 원동 마을에서는 뒷산에 해당되고 북쪽 고개 너머에 위치하는 벽촌인 강동 마을에서는 앞산이 된다. 산마루는 넓은 바위 층으로 되어 있다. 동서남북이 눈에 막히는 것 없이 넓게 내다보이는데, 특히 서쪽으로는 위천을 따라 안계벌의 규모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또한 북으로는 개천지(開天池)의 장관이 손짓하여 부르면 대답할 듯이 가깝게 보이고, 남쪽으로는 멀리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와 대구광역시 군위군 경계의 간점산(肝岾山)이 30리 밖에 보인다. 대암산 봉수가 있어 임진왜란 전까지는 봉홧불을 올려서 서로 교신하였다고 하며, 직로가 아니어서 임진왜란 후에 폐지되었다고 전한다.
여인네들의 외출이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에 대암산은 명소의 역할을 하였다. 폐쇄된 생활을 하던 옛날의 여성들은 오늘날과 달리 친척이나 친구를 만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나 5월 5일 단오 하루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이곳 대암산에는 원근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만남의 장을 이루었는데, 그간의 회포를 푸느라 웃음과 울음이 어우러지는 정겨운 장소가 되었다.
이처럼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서로가 찾아보기도 어려웠던 시절에 화전 놀이가 벌어지는 날은 모두가 만나서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갑갑한 일상을 살던 여인네들이 넓고 활기찬 바깥세상을 만나는 날이었다. 여성들의 이러한 바람을 고려하여 화전놀이의 장소를 정하였던 것 같다. 한편 각종 음식 장사치들도 함께 모여들어 화전 놀이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고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변했고 사람들의 관계도 예전과 달라져 봄날 화전을 지져 먹으며 정담을 나누던 풍경은 전설의 뒤안길로 멀리 사라져갔다.
[모티프 분석]
「대암산의 화전놀이」의 주요 모티프는 ‘대암산’과 ‘화전놀이’이다. 대암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와, 대암산이 임진왜란 전까지 봉수대의 역할을 했던 역사적 내력을 담고 있다. 아울러 그곳에서 이루어졌던 화전놀이가 당대 여성들에게 일상의 탈출구로 작용했던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