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7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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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花郞-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은정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있는 검바위와 화랑재의 유래에 대해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있는 검바위는 조선 시대 퇴계 이황이 ‘검(儉)’ 자를 쓴 것에서 유래한 것이고, 화랑재는 신라의 화랑들이 무예를 수련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인데, 그 이름의 기원을 알려주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79년 의성군 교육청에서 발행한 『문소의 얼』에 「검바위와 화랑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1982년 의성 군청에서 발행한 『의성의 전설』,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다.
[내용]
‘검바위’란 검소할 ‘검(儉)’ 자를 새긴 바위라는 뜻으로 ‘검암(儉岩)’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서 남쪽으로 약 3㎞ 정도 가면 조남리(鳥南里) 드무뜰에 이르게 되는데, 이 마을 검암골 산기슭 절벽에 검바위가 있다. 몹시 험한 바위가 겹겹으로 쌓인 낭떠러지인 층암절벽이 위엄을 자랑하는 아래에는 위천(渭川)의 푸른 강물이 흐른다. 한편 조선 인종(仁宗) 때 이곳 비안현(比安縣)의 주민들은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들은 퇴계 이황 선생이 사치를 경계하고 검소함을 강조하고자 바위에다 ‘검(儉)’ 자를 썼고, 그것을 당시의 석공들이 크게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바위는 일제 강점기 때 허물어져 홍재겸(洪在謙)이라는 인물이 ‘검암(儉巖)’이라고 다시 새겼고, 그것이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또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西部里)에서 서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화랑재’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의 이름이 화랑재인 것은 신라의 화랑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고개를 오르면 평평하고 넓은 곳이 나타나는데, 그 서쪽과 북쪽으로는 푸른 강이 둘러 흐르고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신라의 화랑들이 바로 이곳에서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예를 수련하였다고 전하며, 지금까지도 화랑재라 부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검바위와 화랑재」의 주요 모티프는 ‘사치’와 ‘경계’이다. 검바위는 주민의 사치를 경계하기 위해 퇴계 이황 선생이 검소할 ‘검(儉)’ 자를 바위에 쓰고 그것을 석공이 크게 새긴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화랑재는 신라의 화랑이 무예를 수련하던 곳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