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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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陶山別曲-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집필자 | 권현주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0년 - 「도산별곡」 『의성의 민요』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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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창권역 | 「도산별곡」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 |
성격 | 화전가류 |
기능 구분 | 화전가류 |
형식 구분 | 독창 형식 |
박자 구조 | 4음보 |
가창자/시연자 | 이숙난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전해오는 조성신(趙聖臣)의 가사.
[개설]
「도산별곡」은 조성신이 지은 가사로 『도산가(陶山歌)』라고도 한다. 조성신은 임자년 3월에 예관이 임금의 명을 받고 도산 서원에 내려와 치제하고 겸하여 별과를 열었는데 평소 퇴계 선생을 존경해온 바, 별과 응시 후에 서원 부근의 경관을 구경하고는 가을에 한 번 더 오겠다고 마음먹었다가 훗날 병을 얻어 오지 못한 채 어느 덧 십년이 지나게 되었다. 「도산별곡」은 도산 서원에 다시 오르지 못하는 여한을 글로나마 지어 회포를 푼 것이다.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 전해지고 있는 「도산별곡」은 가창자가 의성에서 태어나서 안동으로 시집간 사람으로 ‘안동’의 명승지에 대한 내용의 작품을 가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도산별곡」은 이숙난[여, 1932년생, 명고리 출생]이 부른 것으로, 2000년 의성 문화원에서 발행한 『의성의 민요』 539쪽에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구성 및 형식]
「도산별곡」은 4음보를 기준한 가사체 형식으로 전체 66행[4음보 기준]의 형식을 띄고 있다. 작품에서는 이황에 대한 이야기, 예관과 도산을 찾은 것, 도산의 명승지에 대해 읊고 있는 것이 주가 된다.
[내용]
「도산별곡」은 ‘태백산 나린용이 영지산이 높았어라 황지로 솟은물이 낙천이 맑았어라 퇴계수 돌아들어 은계촌 올라가니 노송정 유집 터에 대현이 나시었다’로 시작하는 작품으로 ‘우리선생 이곳에 장성하사 당연히 장골이요 후세에 조도소라’에서 볼 수 있듯이 이황(李滉)의 장수처(長壽處)에 대한 이야기로 작품을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관과 함께 도산으로 내려간 작자는 예관이라는 인물을 ‘유서를 탐독하고 고풍을 상상하야 백리 연하에 지존함이 오래더니 임자년 춘삼월에 성덕의 은덕으로 예관의 명을받아 [중략] 별과를 보이시니 어화 성은이야 가지로 망극하다’에서 볼 수 있듯 임자년 춘삼월에 도산으로 부임한 인물임을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도산의 명승지를 동,서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으며, 창강의 흥취에 대해서도 그려내고 있다. 작자는 18수 칠언시와 26수 오언시를 외우고 떠나오며 다음을 기약하지만, 병으로 인해 기약한 것을 지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현황]
「도산별곡」은 규방 가사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년 음력 3월 부녀자들의 화전놀이에서 불렸던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불리고 있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화전가」는 옛 부녀자들이 음력 3월에 다른 지역으로 시집갔던 친구들이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 불렀던 가사이다. 의성군 점곡면 명고리에 전해져 내려오는 「도산별곡」은 원 작품은 「화전가」에 속하는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화전놀이에서 불려 졌던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안동으로 시집갔던 여인이 화전놀이를 핑계로 친정에 왔다가 「도산별곡」을 부른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