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11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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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禹聲 |
이칭/별칭 | 응소(應韶)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덕지 3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교육자.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응소(應韶).
[활동 사항]
김우성(金禹聲)[1876~1947]은 의성군 다인면 덕지 3리 출신으로, 일찍이 재질이 특출하여 아버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13세에 대구 감시(監試)에서 입선하니 소년 재사(才士)로 문명을 떨쳤으며, 더욱 면려정진(勉勵精進)하여 학업이 크게 성취하였다.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하고 우정국 주사(主事)에 임명되었다.
그 후 국운이 기울어지자 국권 회복을 위하여 민족 지사들과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다가 신교육의 보급을 절감하고 낙향하여 봉양 서숙(鳳陽書塾)을 설립하였다. 김우성은 학감(學監)에 취임하여 후진을 양성하던 중 일제의 박해로 중단하였다. 또한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연보 간행에 참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