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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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孝純 |
이칭/별칭 | 북촌(北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출생 시기/일시 | 1603년 - 박효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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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45년 - 박효순 사망 |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
활동지 | 병자호란 전투지 부사 임지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비안(比安). 호는 북촌(北村).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절제사를 지낸 박충인(朴忠仁)의 아들이다.
[활동 사항]
박효순(朴孝純)[1603~1645]은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영변의 부원수 신경발(申景拔)의 예하에 배속되어 있던 중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일선 지휘관으로 적과 육박전을 직접 치르며 『병난 일기(兵難 日記)』를 남겼다. 인조(仁祖)가 상(賞)을 내렸으나 비안(比安) 고을이 군대의 주둔으로 과다한 군비 때문에 민생고가 극심함을 아뢰고 상(賞) 대신에 비안(比安)에 군비 부담을 감해 줄 것을 청원하여 주둔 군대를 절반으로 줄이게 되었다 한다. 훈련원 판관을 거쳐 명천 도호부사에 이르렀다. 여러 고을에 부사를 역임하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한다.
[상훈과 추모]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에 있었던 병호 서원(屛湖 書院)에 배향되었다. 병호 서원은 병호 충렬사(屛湖 忠烈祠), 병호사(屛湖祠)라고도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진충보국한 김희(金喜), 박사숙(朴嗣叔), 병애공(屛崖公) 박충인(朴忠仁)과 북촌(北村) 박효순(朴孝純) 부자를 제향하였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고 유허비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