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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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忠仁 |
이칭/별칭 | 여원(汝元),병애(屛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출생 시기/일시 | 1565년 - 박충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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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4년 - 박충인 수문장에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612년 - 박충인 사망 |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
활동지 | 임진왜란 참전지 절제사 임지 |
묘소 | 박충인 -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자지산 |
성격 | 무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절제사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무관.
[가계]
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여원(汝元), 호는 병애(屛崖). 율정 박서생(朴瑞生)의 7대손이다.
[활동 사항]
박충인(朴忠仁)[1565~1612]은 어려서 정랑(正郞) 김희(金喜)에게서 배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늙은 아버지를 업고 비안 북쪽 화장굴(花藏窟)에서 피난을 하고 있었다. 이때 병사(兵使) 이각(李珏)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출전하였다. 왜적이 동래에 침입했을 때에는 병사 박진(朴晋) 막하의 총군(總軍)이 되었다. 신출 기묘한 작전으로 무수한 적을 베어 소탕하니 주장(主將) 고언백(高彦伯), 김응서(金應瑞) 등이 연명으로 계달하기를 “박충인은 충의가 뛰어나고 지혜와 용기가 출중하여 변방의 생령들을 소생시켰나이다”라고 하였다.
30세에 수문장(守門將)이 되고 이후 선무 원종 훈신(宣武 原從 勳臣), 훈련원 부정(訓練院 副正) 등을 지냈다. 진중이나 향당에서 신망이 높았으나 48세로 죽으니 조정에서 그를 중용하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자지산(紫芝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의성군 비안면 용천리에 있는 병호 충렬사(屛湖 忠烈祠)에 아들 박효순(朴孝純)과 함께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