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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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岳 |
이칭/별칭 | 복여(福汝),월봉(月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창환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복여(福汝). 호는 월봉(月峰).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로 아버지는 정전섬(鄭全暹)이다.
[활동 사항]
정악(鄭岳)[1779~?]은 12살 때 아버지가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는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오래 살지 못하고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에 아버지는 자신이 못 다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아들에게 부탁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유명(遺命)을 받들어 할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했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승중손(承重孫)으로 3년간 시묘를 하였는데 저녁마다 호랑이가 와서 그를 지켜주었다.
정악의 이러한 효심에 감화된 어린 두 아들은 날씨에 구애되지 않고 해가 질 때면 묘소에 와 아버지와 함께 자고 아침이 되면 귀가하였다. 그래서 그의 효자비에는 “사세오효비(四世五孝碑)”라고 적혀 있다.
[상훈과 추모]
마을 사람들의 상소로 1867년 조봉대부 동몽교관(朝奉大夫 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 그리고 낙파(洛坡) 유후조(柳厚祚)가 전기를 짓고, 도정(都正) 성재평(成在平)이 실록을 썼다. 1981년 4월에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선 2리에 숭효각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