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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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河倫 |
이칭/별칭 | 여경(汝敬),모암(慕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하창환 |
출생 시기/일시 | 1748년 - 박하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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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88년 - 박하륜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30년 - 박하륜 효열각 건립 |
사당|배향지 | 박하륜 효열각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1리 경계와 옥정3리 서재마을 입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함양(咸陽)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여경(汝敬). 호는 모암(慕巖). 박진구(朴震龜)와 평산 신씨(平山 申氏)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인 박장춘(朴長春)을 비롯해 많은 효자들을 배출하였다.
[활동 사항]
박하륜(朴河倫)[1748~1788]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극진하였다. 21세에 진성 이씨(眞城 李氏)와 혼인을 하였는데 부인 또한 성품이 어질고 효성이 깊었다. 그는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를 하던 중 쉴 때는 묘소 옆에 있는 바위에 기대어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잠기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바위를 사모암(思慕巖)이라 불렀다. 그의 호가 모암인 것도 그런데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40세가 되던 해에 집에 원인 모를 불이 나서 어머니가 불길 속에 갇히게 되었다. 이를 본 그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어머니를 구하러 곧장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 또한 시어머니를 구하러 뒤따라 뛰어들었다. 하지만 불길이 워낙 거세어 세 사람 모두 빠져나오지 못하고 함께 불에 타 죽었다.
[상훈과 추모]
박하륜의 조카 박상이(朴祥履)와 마을 사람들이 감사와 수의 어사(繡衣御使)에게 효행을 거듭 알리니 1830년(순조 30) 나라에서 효열각을 세웠다. 또한 소암(所菴) 이병운(李秉運)이 기문(記文)을 지었으며, 그에 대한 실기(實記)가 있다. 효열각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천 1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