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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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種崇 |
이칭/별칭 | 경도(敬道),수성재(守省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하창환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이 김해(金海). 자는 경도(敬道). 호는 수성재(守省齋).
[활동 사항]
김종숭(金鍾崇)[1856~1923]은 어려서부터 온화한 성품으로 그 언어와 행실이 항상 공손하였다. 또한 남을 돕는 데는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항상 사람들의 앞장을 섰다. 부모를 섬기는데 있어서도 남달랐다. 밖에서 별식이 생기면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드리고, 기이한 일을 보거나 듣게 되면 빠짐없이 이야기하여 어버이의 몸과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13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몸이 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그 어머니가 몰래 음식에 고기를 싸서 먹이니 곧바로 토해 내었다. 그 후로 줄곧 나물반찬만을 먹으며 지냈다. 어머니가 병으로 몸져눕자 3년 동안 간호를 하며 잠시도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참외를 먹고 싶다고 하였다. 때는 한겨울인지라 참외가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먹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소원을 외면할 수 없어 무턱대고 미친 듯이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양지바른 곳에 참외가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머니에게 올렸다. 그렇게 지성으로 간호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3년을 살았다.
[상훈과 추모]
김종숭은 효성이 조정에 알려져 44세 때 종사랑의 벼슬이 내려지고, 두 해 뒤 12월에는 포상도 주어졌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뒤에는 마을 앞 길가에 여각을 세워 그의 효성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