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45 |
---|---|
한자 | 金德輝妻英陽南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근대 |
집필자 | 하창환 |
[정의]
근대 의성의 열녀.
[가계]
본관은 영양(英陽). 아버지는 선산에 사는 남성한(南成漢)이다. 의성 김씨 집안의 김덕휘(金德輝)와 혼인하였다.
[활동 사항]
영양 남씨[?~1939]는 19세 때 김덕휘와 혼인하였으나 시댁에 이르기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청상의 비운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바느질과 길쌈으로 기울어져 가는 가세의 버팀목이 되었다. 세태의 변화로 개가의 권유도 적지 않았으나 굳은 의지와 절개로 평생을 수절하며 홀로 지내다가, 1939년 80세가 넘는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영양 남씨에 대해 마을에서 효열에 대한 표창이 있었고,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유산 1리 서쪽 큰길가에 효열비가 세워졌다. 종손인 김종해(金鍾海)의 물질적 도움으로 증손자인 김성락(金誠洛)이 비석을 세웠다. 효열비의 글은 이화성(李和成)이 짓고, 글씨는 남병식(南炳植)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