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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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承昌 |
이칭/별칭 | 승대(勝大),의제(義齊)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음지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88년 - 이승창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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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17년 - 이승창 사마시에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37년 - 이승창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34년 - 모화재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960년 - 충령각 건립 |
출생지 | 이승창 출생지 - 경기도 양주군 |
사당|배향지 | 모화재 -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음지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성주(星州) |
대표 관직|경력 | 참봉(參奉)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음지리로 이주해 온 이이남의 아버지로서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충신.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승대(勝大), 호는 의제(義齊). 이집(李諿)의 7세손이 된다.
[활동 사항]
이승창(李承昌)[1588~1637]은 정온(鄭蘊)의 문인으로, 1617년(광해군 9) 사마시에 급제하고, 1632년(인조 10)에 장릉 참봉(章陵 參奉)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호군(護軍)으로 참전하여 홍명구(洪命耈)와 함께 1637년 1월 28일 김화(金化) 백전(柏田)[강원도 화천군] 전투에서 죽었다.
순절 이후 아들 형제가 난을 피하여 가족을 이끌고 의성으로 옮겨와 살았다. 맏아들인 이이남(李爾男)은 1644년에 문소군(聞韶郡)[경상북도 의성군] 음지촌[경상북도 의성군 사곡면 음지리]으로 옮겨와 살았으며, 둘째 아들 이자남(李自男)은 양지촌[의성군 사곡면 양지리]으로 옮겨왔다.
[상훈과 추모]
병자호란 당시 순절한 이승창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이희발(李羲發)이 「순절록(殉節錄)」을 짓고, 이후 후손들이 힘을 모아 1934년 모화재(慕華齋)를 건립하였다. 1960년에는 음지리 마을 안에 충령각(忠靈閣)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