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815 |
---|---|
한자 | 金淮 |
이칭/별칭 | 설(渫),거원(巨源),여수(汝收),경암(敬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상락(上洛)]. 자는 거원(巨源)·여수(汝收), 호는 경암(敬庵). 처음 이름은 설(渫)이다. 할아버지는 인의(引儀) 김세우(金世佑)이고, 아버지는 김사정(金士貞)이며, 어머니는 조희로(趙希老)의 딸 양천 조씨(陽川 趙氏)이고, 부인은 배한림(裵翰林)의 딸 흥해 배씨(興海 裵氏)이다.
[활동 사항]
김회(金淮)[1578~1641]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가학(家學)을 전수 받았다. 1603년(선조 36)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612년(광해군 4)에는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정자(權知正字)·성균관 학유·양현고 봉사·의정부 사록·성균관 학정·봉상시 부봉사·성균관 박사·양현고 직장을 역임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8월에 서장관(書狀官) 겸 사헌부 감찰에 제수되어 연경(燕京)에 갔다가, 1619년(광해군 11) 2월에 돌아왔다. 명나라를 다녀오면서 151일간의 일정을 기록한 「조천일록(朝天日錄)」을 지었다.
인조반정 이후 의성으로 돌아왔다. 1626년(인조 4)에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에 정암 서당(鼎巖 書堂)을 지어 집안의 아들과 조카들을 모아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강학을 하였다. 1627년에 동경(東京) 교수(敎授)와 군위 남계 서원(南溪 書院)의 원장이 되었다. 1635년에 의성군 구산면에 이인정(里仁亭)을 지었다.
[학문과 저술]
저술로는 3권 1책의 『경암 선생 실기(敬庵 先生 實記)』가 있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의성군 옥산면 구성동 수봉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