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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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天牧 |
이칭/별칭 | 오천(梧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의 화산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무신.
[가계]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군련(君戀), 호는 오천(梧川), 시호(諡號)는 충정(忠靖). 할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회령군(會寧君) 마치원(馬致遠)이고, 아버지는 좌찬성에 추증된 회령군(會寧君) 마영(馬榮)이며, 어머니는 대장군 신용재(申用材)의 딸 정경 부인(貞敬 夫人) 평산 신씨(平山 申氏)이고, 부인은 목사 이빈(李彬)의 딸 경주 이씨(慶州 李氏)이다.
[활동 사항]
마천목(馬天牧)[1358~1431]은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안군(靖安君)을 도와 공훈을 세웠고, 1399년(정종 1) 상장군(上將軍)에 올랐다. 이듬해 제2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자 다시 정안군의 선봉이 되어 크게 공헌하였다. 1401년(태종 1) 익대 좌명공신(翊戴 佐命功臣) 3등에 녹훈되면서 전(田) 80결(結), 노비 8구, 은품대(銀品帶) 1요(腰), 표리(表裏) 1감, 말 1필 등을 하사받았다.
1408년 11월에는 회령군 겸 중군총제(會寧君 兼 中軍摠制)를 역임하였다. 마천목에게 내려진 공신녹권과 교서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1409년 9월 감순청(監巡廳) 재직 중에 전리(典吏) 고을귀(高乙貴)를 치사(致死)한 사건으로 사헌부의 청죄(請罪)를 받았으나, 태종의 배려로 곡성(谷城) 유배에 그쳤다.
1409년 10월에 십일도 도절제사(十一道 都節制使)를 설치함에 따라 전라도 도절제사에 복직되었다. 1411년 1월 각위 절제사(各衛 節制使)를 설치하면서 용기시위사 절제사(龍騎侍衛司 節制使)가 되었고, 1412년 5월 전라도 병마도절제사 판나주목사(全羅道 兵馬都節制使 判羅州牧使)로 파견되었다. 1414년에 장흥군(長興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1416년에는 도총제(都摠制)에 개수되었다가 곧 전라도 병마도절제사로 파견되고, 1418년 2월에 내시위 절제사(內侍衛 節制使)가 되었다. 1418년(세종 즉위년) 8월 우금위 절제사, 장흥군에 제수되었다. 1423년 9월에 판우군도총제부사(判右軍都摠制府事)를 지냈다.
1424년 3월 편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고향인 곡성현으로 내려갔으며, 곧 어머니 상을 치렀다. 1428년 7월 장흥군에 복직되었다. 이듬해에 연로를 이유로 치사를 청했으나 도리어 장흥 부원군(長興 府院君)에 진봉(進封)되었다.
[묘소]
묘는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통명산 기슭 방주골에 있다. 신주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 화산 서원에 두었고 매년 음 삼월 초정일에 봉사하고, 시제(時祭)는 매년 음 10월 9일 전라남도 곡성 묘소에서 봉행한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정(忠靖)이며,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하화리에는 마천목의 후손인 장흥 마씨들이 세거하고 있다. 이러한 연고로 마천목을 기리기 위해 1855년 오천 영당(梧川 影堂)을 건립하였는데, 1915년 영당을 개수하여 숭절사(崇節祠)로 고치고, 1976년 화산 서원으로 개칭하면서, 마천목의 맏아들 마승(馬勝)도 함께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