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7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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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旅菴全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간행 시기/일시 | 1939~1940년 - 『여암유고(旅菴遺稿)』에서 누락된 「강계고」 등을 수록한 『여암전서』를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간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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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6년 - 『여암전서』 경인 문화사에서 2책으로 영인 |
소장처 | 영남 대학교 중앙 도서관 - 경상북도 경산시 대학로 280[대동 214-1] |
성격 | 문집 |
저자 | 신경준(申景濬) |
편자 | 신재휴(申宰休) 편(編)|정인보(鄭寅普)·김춘동(金春東) 교(校) |
간행자 | 신조선사(新朝鮮社) |
권책 | 7책 |
행자 | 13행 28자 |
규격 | 세로 26.2㎝|가로 16.9㎝ |
어미 | 상흑어미(上黑魚尾) |
권수제 | 旅菴全書 |
판심제 | 旅菴全書 |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지역 관련 기록이 담긴 신경준(申景濬)의 문집.
[개설]
『여암전서(旅菴全書)』는 18세기 중·후반 활약한 실학자 신경준의 문집이다. 신경준의 시문과 논고는 20세기 들어서 문집으로 간행되었는데, 그중 『여암전서』는 1939~1940년 사이 후손과 후학들에 의해 간행된 것이다. 신경준은 고증학적인 방법으로 「강계고」, 「산수고」, 「가람고」 등과 같은 우리나라 역사 지리학 관련 논고들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에는 현재의 의성 지역에 위치했었던 옛 고을의 역사 지리 정보도 수록되어 있다.
[저자]
신경준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실학자로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순민(舜民), 호는 여암(旅庵)이다. 1712년(숙종 38)에 출생하여 1781년(정조 5)에 사망하였다. 1770년(영조 46) 완성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여지고(與地考)」를 담당하였다. 『여암전서』에서 수록된 역사 지리 관련 논고는 「여지고」 저술의 밑바탕이 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의성 지역 관련 역사 지리 정보가 수록된 「강계고」 등의 저술 시기는 『동국문헌비고』가 완성된 1770년 이전인, 18세기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때의 논고는 저서로 간행되지 못하였다. 신경준의 문집은 사후인 18세기 후반 괘인사본(罫印寫本)으로 정리되어 간행이 준비되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집의 간행은 1910년, 그의 후손인 신익구(申益求) 등의 주도로 『여암유고(旅庵遺稿)』라는 제목으로 처음 이루어졌으나, 『여암유고』 「강계고」, 「산수고」, 「가람고」 등이 수록되지 않았다. 이들 논고는 후손 신재휴(申宰休)가 편찬하였고, 후학 정인보(鄭寅普)와 김춘동(金春東)이 교정한 뒤, 1939년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간행한 『여암전서』에 수록된다. 여기에는 「강계고」, 「사연고(四沿考)」, 「산수고」, 「가람고」, 「군현지제(郡縣之制)」, 「거제책(車制策)」, 「논선거비어(論船車備禦)」, 「수차도설(水車圖說)」 등의 논고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1976년에는 경인 문화사에서 신조선사 간행 『여암전서』에 빠졌던 「도로고」와 「여암잡저(旅菴雜著)」 등을 보완하여, 2책으로 『여암전서』를 영인·간행하였다.
[형태/서지]
1939~1940년에 간행된 신조선사의 『여암전서』는 처음 총 10책으로 계획되었으나, 결국 3책이 누락되어 7책으로 간행되었다. 판식은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은 세로 20.5㎝, 가로 13.6㎝, 책자 크기는 세로 26.2㎝, 가로 16.9㎝이다. 어미는 상흑어미(上黑魚尾)이며, 자수는 13행 28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모두 ‘여암전서(旅菴全書)’이다.
[구성/내용]
신조선사 간행 『여암전서』에서 현재의 의성 지역에 위치했었던 옛 고을 관련 내용은 「강계고」, 「산수고」, 「가람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강계고」는 우리나라 역대의 강계와 지명 등을 고찰한 역사 지리 논고이다. 『여암전서』 권6 「강계고」 3에는 고대 의성 지역에 존재하였던 조문국 항목을 수록하여, 조문국의 지리적 연혁을 간략히 소개해 놓았다.
「산수고」는 우리나라 산줄기와 강의 흐름을 정리한 것이다. 『여암전서』 권12 「산수고」 3 산경(山經)에는 현재의 의성군인 조선 시대 의성현(義城縣)과 비안현(比安縣), 그리고 예천군(醴泉郡) 일부 지역에 위치한 산줄기를 소개하고 있다. 『여암전서』 권15 「산수고」 6 수위(水緯)에는 현재의 의성군에 위치한 강과 하천, 저수지 등을 의성현, 비안현, 그리고 상주 편에서 설명해 놓았다.
「가람고」는 우리나라 각 지방에 있는 사찰의 명칭과 소재지, 기문(記文), 현판, 금석문 등을 간략히 소개한 것이다. 현재의 의성 지역에 위치한 사찰은 『여암전서』 권15, 「가람고」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여암전서』에 따르면, 의성에는 수량사(修量寺)·고운사(孤雲寺)·주월사(住月寺)·지보사(持寶寺)·운람사(雲嵐寺), 비안에는 용천사(龍泉寺)·미흘사(彌屹寺)·용흥사(龍興寺)·옥련사(玉蓮寺), 그리고 예천에 소속되었던 대곡사(大谷寺) 등이 있다. 한편 1976년 경인 문화사에서 증보하여 편찬한 『여암전서』 「도로고」와 「사연고」 봉로(烽路), 개시(開市) 편에는 현재의 의성 지역에 위치했었던 과거의 대로(大路), 봉수(烽燧), 그리고 시장에 대한 정보가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여암전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역사 지리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일찍이 주목되어 왔다. 아울러 현 의성 지역의 고적 및 역사 지리 정보 등도 수록되어 있어 향토사적 가치도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