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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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氷溪書院 |
이칭/별칭 | 장천 서원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80[빙계리 산73-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566년 - 장천 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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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576년 - 장천 서원 사액 수여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592년 - 장천 서원 임진왜란 중 소실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01년 - 장천 서원을 현 위치로 이건, 빙계 서원으로 개칭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89년 - 빙계 서원 유성룡, 김성일, 장현광 등을 추향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14년 - 빙계 서원 원묘 중수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빙계 서원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6년 - 빙계 서원 복원 |
현 소재지 | 빙계 서원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80 |
원소재지 | 빙계 서원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3-1 |
성격 | 서원 |
양식 | 맞배지붕[숭덕사]|팔작지붕[명교당]|팔작지붕[학이재]|팔작지붕[시습재] |
정면 칸수 | 3칸[숭덕사]|4칸[명교당]|3칸[학이재]|3칸[시습재] |
측면 칸수 | 2칸[숭덕사]|3칸[명교당]|1.5칸[학이재]|1.5칸[시습재] |
소유자 | 빙계 서원 재산 보존 관리 위원회 |
관리자 | 빙계 서원 재산 보존 관리 위원회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사설 교육 기관.
[위치]
빙계 서원은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80[빙계리 산73-1]에 있다. 빙계 휴게소[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낙전길 64]에서 현리낙전길 방향으로 가다 보면 현리교가 나온다. 현리교를 건너면 바로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회전[빙계계곡길 표지판 안내 방향]하여 160m 가량 직진하면 빙계 군립 공원 관리실[매표소]이 나온다. 이곳에서 약 150m 이동하면 빙계 서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
[변천]
『여지도서(輿地圖書)』를 보면 “빙계 서원은 가정 병진년[1556년(명종 11)]에 장천(長川)가에 처음 세우고 김안국의 위패를 모셨다. 1576년(선조 9) ‘장천’으로 사액 받았다. 그 후 빙산사(氷山寺) 옛 터로 옮겨 세우고 이언적의 위패를 함께 모셨으며 이름을 ‘빙계’로 바꾸었다. 1689년(숙종 15) 고을 사람들이 올린 상소에 따라 유성룡, 김성일, 장현광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氷溪書院 在郡南三里明宗丙辰申元祿創建享文敬公金安國宣祖丙子賜額長川庚子李光俊移建于氷山寺舊址改今名追享文元公李彦迪肅廟己巳追享文忠公柳成龍文忠公金誠一文康公張顯光]”고 기록하고 있다. 이긍익(李肯翊)[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원의 창건 연원이 깊고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빙계 서원 건립은 신원복(申元福), 신원록(申元祿) 형제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신원복은 1543년(중종 38) 인근 고을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1495~1554]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할 때 동생 신원록을 보내 주세붕을 스승으로 받들게 하였다. 주세붕에게서 수학을 한 뒤 돌아온 신원록은 의성에도 서원이 필요하다고 건의하였고, 논의 끝에 1556년 김안국(金安國)을 배향하는 장천 서원을 건립하였다. 1576년(선조 9)에는 나라로부터 ‘장천(長川)’의 사액을 받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1600년(선조 23) 의성 지역 유림들의 논의를 거쳐 현 위치[빙산사]로 옮기기로 결정하였고 이듬해 ‘빙계(氷溪)’로 이름을 고쳤다.
서원을 이건한 내용은 1666년(현종 7) 남몽뢰(南夢賚)가 쓴 기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건은 1600년(선조 23) 이광준(李光俊)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전란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옛 재목과 남은 기와를 주로 활용하여 이듬해 준공하였다. 서원 건물은 강당, 동재, 서재, 전루(前樓), 동몽재, 공수청(公需廳) 등 총 30여 칸으로 되어 비록 병란 직후 어려움 속에 건립했지만 학궁의 규모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한다. 다만 마루가 좁고 연못이 없는 것을 아쉽다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이광준의 손자 이정숙(李廷橚)과 박전(朴㙉)의 주도로 1647년 봄 묘우가 이루어졌고, 1648년 가을에는 서루(書樓)가 일어났으며, 1654년에는 주방, 1662년에는 강당 등 전후 건물들이 차례로 중건되었다고 한다.
빙계 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오랜 기간 동안 폐허로 남게 되었다. 그러다 2002년 의성 지역 유림의 공의를 모아, 2006년 유교 문화권 관광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복원을 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빙계 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태로 사당인 숭덕사(崇德祠), 강당인 명교당(明敎堂), 동재인 학이재(學而齋), 서재인 시습재(時習齋)를 비롯하여 공수청, 빙월루(氷月樓)[누각, 서원의 출입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명교당 앞에 자리 잡은 학이재와 시습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온돌방으로 방을 한 칸 내고, 난간을 두룬 툇마루를 넓게 낸 것이 특징이다.
학이재 옆에는 담장을 쌓아 별도의 부속 건물을 두었는데 공수청(公需廳)과 전사청(典祀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양쪽으로 방을 두면서 마루를 앞으로 내었다. 좌측 방과 마루 틈새에 창고의 역할을 하는 건물을 배치시켜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숭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사당 안에는 빙계 서원(氷溪書院)은 김안국(金安國)[1478~1543]·이언적(李彦迪)[1491~1553]·김성일(金誠一)[1538~1593]·유성룡(柳成龍)[1542~1607]·장현광(張顯光)[1554~1637]·이광준(李光俊)[1531~1609] 등 6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현황]
현재 빙계 서원에는 ‘빙계 서원(氷溪書院)’, ‘숭덕사(崇德祠)’, ‘명교당(明敎堂)’, ‘학이재(學而齋)’, ‘시습재(時習齋)’, ‘빙월루(氷月樓)’, ‘공수청(公需廳)’, ‘전사청(典祀廳)’ 등의 현판과 「빙계서원기(氷溪書院記)」 등의 기문이 있다.
빙계 서원에서는 정기적으로 석전대제(釋奠大祭)가 행해지고 있으며, 근래에는 고가 음악회 ‘전통과 현대의 만남, 고가에서 만나는 Happy Concert’를 개최하고 있다. 비지정문화재로, 현재 빙계 서원 재산 보존 관리 위원회가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