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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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靑銅器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이형기 |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개설]
청동기 시대는 일반적으로 인류의 물질 문화 발전 단계 중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만들어 쓰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당시의 시대상은 본격적 농경의 시작, 무문 토기의 사용, 마제 석기의 본격적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청동기 시대의 의성]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개시 연대는 오르도스 청동기와의 교차 편년에 의해 기원전 7세기경으로 보았으나, 최근에는 중국 요령성 남산근 유적과 의주 신암리 유적 출토 청동기간의 교차 편년을 통해 기원전 10세기까지 올려보고 있다. 하한 연대 또한 청동기와 함께 철기가 유입되어 공존하는 시기를 초기 철기 시대라고 볼 경우 4세기 말~3세기 초까지로 추정한다.
의성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생활과 관련된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 연대는 알 수 없지만, 다만 전역에 걸쳐 청동기 시대 대표적 거석 유적인 고인돌[支石墓]과 선돌[立石]이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의성 지역 전역에서 청동기 시대의 문화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비록 이 지역에서는 석기 시대 유적이 추정은 된다고 할지라도 직접 발견되지는 않고 있어, 청동기 시대 유적을 통해 이때부터 의성 지역에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청동기 시대 구성원들은 농경을 주로 하면서 사냥과 고기잡이를 병행했으며, 일부 돼지와 같은 가축도 길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 자원으로는 벼·보리·조·피·수수·콩 등 여러 종류가 발견되었다. 울주 반구대 바위 그림을 보면 그물로 고기를 잡거나 고래 같은 대형 동물도 사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의성 지역에서는 최소한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는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농경 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는 본격적으로 영위된 농경을 통해 활발한 생산 활동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경제력의 집중에 따른 소국 성립의 바탕이 된다. 의성 지역의 조문국도 결국 청동기 시대의 생산 경제의 발달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성 지역의 고인돌]
고인돌[支石墓]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으로 부족 우두머리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의성 지역에서는 농경지 개간 등으로 많은 훼손이 있었겠지만 약 190여 기가 산재하고 있다. 의성 지역의 고인돌 분포 현황을 보면, 위천·쌍계천·남대천·미천 등지에 주로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봉양면·비안면 등지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대부분 하천 유역 평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해발 100m 이내의 구릉 사면에도 몇 기가 남아 있다.
또한 의성군 봉양면 장대리와 의성군 금성면 초전리 등지에는 수십 기가 한꺼번에 무리지어 있고, 1~3열로 배치되어 있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봉양면 장대리에 위치한 것으로 장축 350㎝, 단축 275㎝, 두께 98㎝이며 이와 비슷한 규모의 것이 10여 기에 이른다. 자세히 살펴보면, 의성군 비안면 용천 2리[서원골] 앞산에 고인돌 11기, 동산[후촌 마을]에 고인돌 17기, 의성군 비안면 용천 1리 앞산[김가산]에 고인돌 1기, 용남 1리[번답들] 고인돌 2기, 서부 2리[박연] 길옆 솔밭에 고인돌 2기 및 고인돌 형태의 잔돌 등이 여러 군(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옥연 1리[가내새]에 고인돌 1기는 전통적인 지석 형식의 원형 그대로 발견되었다. 또 사친 뒷산에 고인돌 4기, 옥연 2리[옥포, 일명 칠성 바위]에 고인돌 17기가 용천리와 위천을 사이에 두고 분포되어 있다. 비안면 고인돌의 위치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 강가 야산 평지에 위치하면서 하천 유향과 지형 전개 방향으로 대부분 분포되어 있다. 특히 고인돌의 경우 대체로 해발 100m 이내에 분포되어 있어 당시 어로와 농경을 주된 생활 수단으로 하는 경제 생활과 주거지 및 묘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비안면 용천 2리[서원골] 고인돌은 상석 상면에 은 구멍[성혈(性穴)]들이 발견되었다.
고인돌의 분포는 청동기 시대 취락의 분포와 연결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위천·쌍계천·남대천 등 하천 유역 평지에 의성 지역에서는 청동기인이 농경과 어로 등의 생산 경제 활동을 하면서 생활을 영위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의성 지역의 선돌]
고인돌과 더불어 대표적인 거석 유적인 선돌은 경계, 성스러운 장소, 무덤의 표지 등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선돌은 다인면에 4기, 안계면에 1기, 안평면에 1기, 봉양면에 3기, 옥산면에 3기 등 총 15기가 남아 있으며 이 중 대구광역시 군위군 효령면과 경계 지역인 금성면 도경리 선돌 마을에 있는 선돌이 높이 245㎝, 폭 250㎝, 두께 180㎝로 규모가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