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200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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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內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송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마강열 |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송내는 본래 장각(獐角)골로 불리었는데, 1620년경 삼척 임씨(三陟 林氏)가 이주하여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뒤 2개의 산골이 노루의 뿔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였다 한다. 그 후 임씨가 떠나고 조계승(曹溪僧)이 마을 앞에 소나무를 심어 송림이 우거지게 되니 송내(松內)라고 불렀다 한다. 한편 위치가 노송소[노송소모랭이] 안쪽이기 때문에 붙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자연 마을 다릿골[교동]은 16세기 중엽 조씨(趙氏)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앞산 밑 골짜기에 서당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오가기 불편하여 하천에 교량을 만들고 통행하였다고 하여 다릿골이라 불렀다. 실학자 장영실의 아버지인 장성휘를 비롯한 아산 장씨 오형제가 모두 전서를 지내는 영예를 누려서 커다란 무지개 다리를 놓았는데 귀인들은 위로, 천인들은 아래로 다니게 하면서 다릿골이란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후생촌은 6·25 전쟁 때 피난민을 위해 정부에서 만든 마을이라고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의성군 점곡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교동, 하리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점곡면 송내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해 송내동을 송내리로 개칭하였다.
[자연 환경]
산간 마을로서 북동쪽 등운산에서 물줄기가 흘러 내려 마을 남쪽 미천으로 유입된다. 마을 남쪽과 미천 유역에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으며 마을은 등운산 남쪽 골짜기 주변에 입지하고 있다.
[현황]
송내리는 점곡면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현재 면적은 6.0㎢이며, 총 118가구에 253명[남자 125명, 여자 128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사촌리와 경계를 하고, 서쪽으로는 단촌면 후평리, 남쪽은 단촌면 병방리, 북쪽은 단촌면 구계리와 이웃하고 있다. 자연 마을에는 송내[장각골], 다릿골[교동], 서당골 , 후생촌 등이 있다.
지방도 79호선이 마을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지나고 있다. 북서쪽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으로 연결이 되고 남동쪽은 점곡면과 옥산면, 의성읍으로 연결이 된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며 벼농사가 중심이 되어 고추, 사과 등이 생산이 된다.
유적으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적에 항전하다가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순국한 김치중(金致中)의 의열각(義烈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