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486 |
---|---|
한자 | 瑞山富長里古墳群出土鐵製鐎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음암로 49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이훈 |
제작 시기/일시 | 백제 |
---|---|
출토|발굴 시기/일시 | 2005년 - 임대 아파트 신축 예정 부지에 대한 문화 유적 발굴 조사 |
현 소장처 | 국립공주박물관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360 |
원소재지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 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110-2 |
출토|발견지 | 서산 부장리 고분군[Ⅱ지점 5호분 1호 토광묘] -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산46-1 외 |
성격 | 초두(鐎斗) |
재질 | 철 |
크기(높이,길이,너비) | 3.5㎝[개(蓋)]|16.2~16.5㎝[초두(鐎斗)]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에 있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제초두.
[개설]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철제초두는 서산 부장리 고분군 Ⅱ지점 5호 분구묘 1호 널무덤의 목곽 내에서 출토되었다. 초두는 솥의 일종으로 다리가 3개 달려 있고 몸통 중간에 긴 손잡이가 있으며, 일반적으로 술이나 약, 음식물을 데우거나 끓이는 용도로 알려져 있다. 재질에 따라서 청동초두, 철제초두 등으로 불리며, 뚜껑과 함께 출토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백제 지역에서 출토된 초두는 대부분 청동제 반형(盤形) 초두로,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와 풍납토성의 출토품이 대표적이다.
[형태]
서산 부장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철제초두의 형태는 둥근 주전자형 몸체에 구연부(口演附)가 좁고 직립해 있으며, 주구(注口)가 달려 있다. 초두의 바닥에는 3개의 다리가 달려 있다. 뚜껑은 상면이 편평하여 원반형에 가깝고, 상면 중앙에는 보주형(寶珠形)의 꼭지가 부착되어 있다. 개(蓋)는 3.5㎝, 초두(鐎斗)는 16.2~16.5㎝이다. 주구는 몸체 상단부에서 45° 정도 각도로 솟았다가 직각으로 꺾인 형태로 아래 부분과 연결된다. 주구의 구멍은 직경이 1.1~1.2㎝인 타원형이다.
손잡이는 길이가 25㎝ 정도로, 기부 쪽이 한쪽 다리 상단부와 몸체의 저부 사이에 연결되어 있다. 또한 몸체에 연결된 부분에서 5.0㎝ 정도 길이로 곧게 뻗었다가 각이 지게 한 번 꺾여 1.5~1.7㎝ 정도 길이의 경사면을 이루고, 다시 한 번 꺾인 형태로 길게 이어진다. 다리는 상단부와 하단부의 굵기가 굵고 중간 부분이 가늘며, 접지면 쪽으로 가면서 약간 바라지는 형태다.
[특징]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철제초두는 지금까지 백제의 전형적인 초두로 인식되어 온 청동제 반형초두(盤形鐎斗)와 달리 철제 호형초두(壺形鐎斗)로 뚜껑과 함께 출토되었다. 백제 지역에서 출토된 초두 중 철제초두로는 유일하다. 철제초두는 크기와 몸체, 병부, 다리의 형태와 재료가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로 토착화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재료의 특성상 용융점이 높고 가공하기가 어려워 매우 단순한 형태이며 세부 장식이 전혀 없다. 따라서 화려한 청동제 초두와 달리 의식적인 용도보다는 실생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초두는 하늘이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행할 때 사용하는 예기의 일종이다. 삼국 시대 때는 5세기 이후 중국풍의 금속제 예기를 본격적으로 수용하였는데,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철제초두는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들어온 물품으로 보인다. 초두는 동아시아 각국이 공유한 물품이었으므로 초두의 형태적인 특징을 세밀하게 관찰하면 각국 고고학 자료의 교차 편년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서산 부장리 고분군 출토 철제초두는 향후 서산을 비롯한 백제의 여러 지역에 대한 고고학 편년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중요 유물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