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9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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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遊天生山記 |
영어의미역 | Travel Writing of Cheonsaengsan Mounta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구평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영주 |
성격 | 기행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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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이만운(李萬運, 1736~?) |
창작연도발표연도 | 1818년(순조 18) |
[정의]
1818년(순조 18) 이만운이 구미 지역의 천생산성 일대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
[개설]
이만운(李萬運, 1736~?)은 조선 정조(正祖, 1752~1800) 때의 학자로 자는 원춘(元春), 호는 묵헌(默軒)이다. 박학하여 천문·역산(曆算)·지리·명물(名物) 등에 능하였다. 「유천생산기」는 이만운이 박여(朴汝)·엄익치(嚴益稚)와 더불어 정월 보름날 신동·황상동·금전동·장천면에 걸쳐 있는 천생산성(天生山城)·천생산(天生山)·밀덕암(密德庵) 일대를 유람하고 난 후 소감을 기록한 기행문이다.
[구성]
처음에 천생산의 유람에 나서게 된 동기를 묘사하였고, 그 다음에 유람의 과정 중에 보았던 갖가지 경관 그리고 산사의 밤에 느끼는 정감을 서술하였다.
[내용]
1818년 정월 보름, 이만운은 박여·엄익치와 경상북도 구미의 신동·황상동·금전동·장천면에 걸쳐 있는 천생산의 정상에 올라 천연적으로 생성된 깎아지른 절벽과 험한 지형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곡식과 기계 등을 저장해 둔 십여 채의 집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홍의 장군 곽재우(郭再祐, 1552~1617)가 요새로 삼아 왜적과 싸울 정도로 험한 곳이었지만 물이 없어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정상 아랫부분에 높이가 만 척에 달하는 밀덕암이 있는데 그곳을 거닐면 마치 무지개를 넘듯, 은교(銀橋)를 건너듯 두려워 오래 머무를 수 없을 정도였다. 천생산 남쪽의 가야산(伽倻山)과 북쪽의 학가산(鶴駕山), 서쪽의 금오산(金烏山), 동쪽의 가록(架麓) 등을 둘러보고 천생산성 아래의 만지사(萬持寺)에 들러 범패 소리를 들으며 산사의 그윽한 밤경치를 감상하였다.
[의의와 평가]
「유천생산기」는 조선 후기 도학자(道學者)들의 심성 수양 차원의 유람이 아닌, 자연 감상 및 역사적 공간을 추억하는 조선 말 문인들의 유람의 한 전형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