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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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田洞 |
영어음역 | Geumjeon-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금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규택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유래]
금전동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금전동에 속한 자연마을의 유래를 살펴보면, 가곡(佳谷)은 천생산의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산세를 뽐내는 계곡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와래[臥川]는 가산과 천생산에서 흘러내려 온 물이 합쳐져 물이 유유히 누워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복리는 마을에 살던 박 선달이라는 부자가 마을 근처 바위에서 자주 굿을 하면서 재산을 지키며 살았다 하여 굿바위라고도 하며, 또한 용한 점쟁이가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웃마는 마을 위쪽(본리)에, 아랫마는 마을 아래쪽(와전리)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연환경]
남쪽으로 천생산(天生山, 406.8m), 북쪽으로 낙동강 지류 한천 주변에 형성된 들과 200m 이하의 낮은 산지가 펼쳐져 있다. 동쪽과 서쪽은 한천이 지나고 있어 트여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자연마을의 위치와 주민의 이동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마을은 천생산 계곡과 한천의 남쪽 들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민들은 한천을 따라 동쪽(군위 또는 칠곡 방향)과 서쪽(구미 시내 방향)으로 주로 이동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금전동의 개별 마을 각각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며, 가곡의 경우 15세기 말 임진왜란 당시 강릉유씨가 난을 피해 터를 잡으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가곡은 천생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계곡과 한천 남쪽에 형성된 들판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마을로,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1960년대 초반까지 금전동은 배산임수 지형에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서 한천에는 인공 제방이, 구복리와 가실마을의 계곡에 금전못이 만들어졌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금전동은 큰 변화를 겪었다. 마을 진입로와 안길이 확장·포장되었고, 한천에 다리를 놓아 북쪽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한천 주변 지역에 구미국가산업단지 제4공단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현황]
구미시 양포동에 속한 지역으로, 2009년 1월 현재 면적은 5.64㎢이며, 총 77가구에 180명[남 96명, 여 84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칠곡군 신장리, 동쪽으로 구포동, 남서쪽으로 황상동과 접하고 있다. 금전동 주민들의 성씨를 보면 밀양박씨, 의성김씨, 김해김씨, 순천김씨, 강릉유씨가 많이 살고 있다.
금전동은 1980년대까지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으나 구미시 시가지가 외연적으로 팽창하여 낙동강의 왼쪽(동쪽)까지 확장되고 제4공단이 건립됨에 따라 도시 지역으로 탈바꿈하였다. 이 같은 현상은 금전동뿐만 아니라 양포동에 속한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