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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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歸樂堂記 |
영어의미역 | Account of Guirakda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영호 |
성격 | 기(記)|당호기(堂號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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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송시열(宋時烈, 1607~1689) |
창작연도/발표연도 | 1676년(숙종 2) |
[정의]
1676년(숙종 2) 송시열이 구미 지역의 고아읍 귀락당에 은거한 이동명을 위해 지은 당기.
[개설]
송시열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로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우재(尤齋)이다.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고 일원론적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예론에도 밝았다. 주요 저서에 『송자대전(宋子大全)』 등이 있다.
1675년(숙종 1) 이동명이 영해부사(寧海府使)로 갔다가 탄핵을 받고 파면당하여 1676년 구미 지역의 고아읍 예강리로 돌아와 매학정 곁에 집을 짓고 귀락당이라 이름 지었는데, 1675년 장기(長鬐)로 유배를 갔던 우암 송시열이 “마지못해 벼슬하다 늙어서는 돌아오고 돌아와서 즐거워한다(强而仕 老而歸 歸而樂)”고 한 주자(朱子)의 글을 빌려 「귀락당기」를 지었다.
[구성]
서두에 귀락당의 주인을 밝히면서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귀락(歸樂)의 의미와 그 어려움을 역설하였다. 그 다음 귀락당의 주인에 대한 반어적 평가를 한 후 이동명의 출신과 행실을 기록하여 세인들의 평가에 반론하여 상대적으로 귀락당 주인을 부각하였다.
[내용]
율곡 이이의 증손인 이동명이 구미 지역 선산의 고산(孤山, 황기로의 호이기도 함)에 작은 집을 지어 이름을 ‘귀락’이라 하니 그 뜻이 원대하다고 하였다. 주자의 “마지못해 벼슬하다 늙어서는 돌아오고 돌아와서 즐거워한다.”는 말을 빌려 이동명이 대현(大賢)의 후손임을 언급하면서 세인들이 말하는 피핵을 위해 ‘귀(歸)’하는 것이 아니며, 이동명은 강호의 조용한 곳에서 독서로 진리를 완미하여 진실로 귀락을 알고 돌아온 사람임에 부족함이 없다고 강조하였다.
[특징]
「귀락당기」는 사물에 대한 원론적 의미를 현사의 말을 빌려 설명한 후 반어적 수법으로 반성하게 하고, 원론에 귀결시켰다. 1675년 유배를 당한 작자 자신인 송시열을 ‘병수(病叟)’라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