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7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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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桃李寺由來 |
영어의미역 | Origin of Dorisa Templ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최광석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송곡리에서 도리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아도는 고구려의 승려로, 일명 묵호자·아도·아두라고도 한다. 아도는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기 100여 년 전의 인물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아도는 눌지왕 때 고구려에서 신라로 건너가 불법을 전하였다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아도는 5살에 출가하여 19살에 어머니 고도령의 명을 받들어 263년(미추왕 2) 신라 왕가에 불교를 전파하려다 실패하였다. 이후 모례의 집에 숨어 있다가 미추왕의 딸 성국공주의 병을 고친 공으로 불교 전파의 허가를 받고 홍륜사를 지었다. 미추왕이 죽은 후 아도는 다시 모례의 집에 굴을 파고 들어앉아 수도하다가 죽었다.
[채록/수집상황]
198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출간한 『한국구비문학대계』와 2000년 구미문화원에서 출간한 『구미시지』에 수록되어 있다. 문헌이나 현지 채록본에 따라 조금씩 편차를 보이는데, 그 가운데 아도화상이 모례의 시주를 받아 도리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가장 흔하다. 그러면서 모례에 대한 시각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내용]
신라 눌지왕 때 아도화상은 모례장자의 집에 굴을 파고 숨어 살았다. 은신하던 중 아도화상은 모례장자의 집 옆에 절을 지어 부처를 모시고 경전을 강론하였는데 눈 속에서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활짝 피어나는 일이 있었다. 이에 아도화상은 절 이름을 도리사라 지었다고 한다. 한편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서 채록된 또 다른 설화로 아도화상이 포교를 위해 신라에 갔으나 들어가지 못하여 근방에 도리사를 짓고 공부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티프 분석]
도리사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아도화상의 강론’과 ‘부처의 법력’이다. 아도화상이 피신 중 모례장자의 집 옆에 절을 창건하였다는 사찰창건담이자 아도화상이 경전을 강론하던 중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활짝 피어나 절 이름을 도리사라 지었다는 사찰유래담이다. 「도리사 유래」는 아도화상과 부처의 영험한 법력과 더불어 불교가 신라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겪은 진통을 보여 준다. 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전승 의식이 깔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