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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가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2735
영어의미역 Folk Song
이칭/별칭 무녀유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다식리|옥성면 초곡리
집필자 정서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요
가창자/시연자 홍헌악|육종수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에서 경기민요 「노랫가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민요.

[개설]

「노랫가락」은 원래 경기민요의 하나로 「무녀유가(巫女遊歌)」라고도 한다. 서울 지방 무가(巫歌)가 속요로 변한 노래 중 하나이다.

[채록/수집상황]

수집된 「노랫가락」은 두 사람의 가창자에 의해 불렸다. 첫 번째 「노랫가락」은 천혜숙·조형호가 1984년 7월 11일 고아읍 다식리 모산에서 홍헌악(여, 당시 64세)에게서 조사·채록하였다. 두 번째는 최정여·박종섭·임갑랑이 1984년 7월 26일 옥성면 초곡리에서 육종수(남, 당시 64세)에게서 조사·채록하였다.

[내용]

홍헌악이 부른 「노랫가락」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남녀가 만나 혼례를 올려 부부의 인연을 맺고 정을 나누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모 자식 간의 정과 형제간의 정도 중요하지만, 평생을 함께 할 부부간의 정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화둥둥 내사령아/당신과 나와 만날적에/엘두포장 치할밑에(차일 밑에)/서동아부석 갈라나 쓰고(나누어 쓰고)/사모관대는 내가쓰고/쪽도리 행금은 그대쓰고/학이야 핑풍 둘러쳐고/대추우 갈라놓고/암탉장딸 묶어놓고/절개잇는 청전잎을/백옥점에다가 불을 밝혀/청실홍실을 걸어놓고/소반위에 정화수로/간수시수를 한연후에/북항재배 하고 날적에/서부지청에 삼잔술로/한배일진 하온후에/박년하고야 배필을맺고/일락서산에 해가지니/월출동명에 달돋는다/분벽아사창 저도방에/산수병풍을 둘러쳐고/화촉동방 깊은밤에/원앙아금침 잡비게를/단둘이 비고 누웠으니/남남끼리두 만난 인정이/믿읍고도나 중하더라/부모인정이 깊다고해도/이이에서 더하오이면/헝지간인정 중타 해도/여어게서 더할소냐/일핑생에 길훙지사는/오날저녁이 영광일세/장할시구 호히나 범절(예의와 범절)/요순시절에 내섰던가/공명시절에 내섰던가/호호지락으 부부지낙을/그누라서 금할소냐/어저저녁날 초면이더니/오늘아침은 구면일세/초면구면 삼행길에(신행길에)/백년낭군을 따라가니/얼씨고 절씨고 좋을시고/호위범절이 장할시고/이리 리리리 리리이 리이/어화둥둥 내사령아.

육종수가 부른 「노랫가락」은 나이 들고 병들면 놀지 못하니 젊어서 놀기를 권하는 노래로 가사는 다음과 같다.

어하~ 놉시다/젊어서 놀아/나많고 병드면 못노나니/돌아서면은 잊을줄이야/나도 번연이 알았건만/어리석은 미련한 남아/그래도 못잊을 노랫가락/좌중에 초면이요/다시 보니까 구면인데/잘하던지 못하던지/노랫가락을 하옵나니/잘하거덩 칭찬을 하고/못하거들랑 용서하시오/원앙침 마주나 비고(베고)/양인상대가 어젤러니/탄탄히 믿었던 정은/나를 버리고 어데를갔소/백년사자 굳은 언약이/허망히될줄 내몰랐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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