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5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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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許蒹 |
영어음역 | Heo Gyeom |
이칭/별칭 | 성산(性山),허혁(許爀),허환(許煥),허노(許魯)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인호 |
성격 |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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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임은동 |
성별 | 남 |
생년 | 1851년 |
몰년 | 1940년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김산의진 찬획|부민단 단장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허겸(許蒹)의 호는 성산(性山)이다. 아버지는 청추헌(聽秋軒) 허조(許祚), 어머니는 진성이씨이고, 방산 허훈의 동생이자 왕산 허위의 형이다. 허겸은 다른 이름으로 허혁(許爀)·허환(許煥)·허노(許魯)를 같이 사용하였다.
[활동사항]
허겸은 1896년 3월 아우인 허위가 김산에서 이기찬을 대장으로 추대하여 의진을 일으키자 찬획으로 참여하였다. 이어 형 허훈이 진보의진을 일으키자 이를 돕기 위해 진보에 가서 소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체결 반대 상소를 올리고 10월에는 을사오적 암살 사건에 가담하였다가 투옥되었다. 1907년 허위가 연천에서 거의하였을 때 다시 의병에 참여하였다.
1912년에는 허위와 허형·허필 집안사람들을 데리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퉁화현에서 김동삼(金東三)·유인식(柳寅植)과 함께 중어학원(中語學院)을 개설하고, 하니허[哈泥河]에서는 망명 조선인들의 자치 단체인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여 초대 단장으로 취임하였다. 이후 만주와 노령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22년에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출옥 후 86세 때 다시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벌여나가다 1940년 주허현[珠河縣] 허뚱[河東]에서 서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에 대통령표창을,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