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375 |
---|---|
한자 | 張鴻翰 |
영어음역 | Jang Honghan |
이칭/별칭 | 순거(順擧)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인호 |
[정의]
조선 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동. 자는 순거(順擧). 고려 금오위상장군(金吾衛上將軍) 장금용(張金用)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張潛)이며,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장곤(張崑)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로 내금위(內禁衛)를 지낸 이훈(李薰)의 딸이다.
[활동사항]
장홍한은 임진왜란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산·개령·선산·지례 등지에서 왜적을 토벌하였다. 상주판관(尙州判官)에 제수되어서는 상주목사 정기룡의 휘하에서 왜적과 싸웠다. 24세의 나이에 병으로 군중에서 죽자 정기룡은 친히 염습하여 장례를 치러 주었다.
[학문과 사상]
형인 장천한·장경한·장광한·장용한·장봉한과 함께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여 ‘육한(六翰)’ 혹은 ‘육문장(六文章)’이라고 불렸다.
[상훈과 추모]
묘소는 경상북도 구미시 양호동 시루골에 있다. 임진왜란 때의 공훈을 높이 평가하여 관련 공적을 충훈부(忠勳府)에서 기록하였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도 “촉의 산이 아무리 높다한들, 촉의 물이 아무리 깊다한들 그대에게 보내는 이 슬픔에는 미치지 못할진저(蜀山高蜀水深 不及伊吾送爾情)”라는 만사를 지었다.